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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표밭 농민 달래기..브라질·아르헨 철강·알루미늄 관세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03 15:17

수정 2019.12.03 15:17

President Donald walks to board Air Force One for a trip to London to attend the NATO summit, Monday, Dec. 2, 2019, at Andrews Air Force Base, Md. (AP Photo/ Evan Vucci)
President Donald walks to board Air Force One for a trip to London to attend the NATO summit, Monday, Dec. 2, 2019, at Andrews Air Force Base, Md. (AP Photo/ Evan Vucci)
[파이낸셜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무역전쟁 전선을 확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환율을 조작했다면서 이들 국가에서 수입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를 물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을 정도로 경제위기에 몰린 상태이고, 브라질은 오랫동안 시장에서 환율이 결정되는 변동환율제를 택하고 있어 트럼프의 '환율조작' 주장에 전문가들은 동의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부과는 미국과 국제 농산물 시장에서 경쟁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대한 통상보복을 통해 중국의 수입 급감으로 어려움에 빠져 있는 미 농민들을 다독이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선 앞두고 표밭 다지기
미·중 무역전쟁으로 가뜩이나 수출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미 농민들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농산물이 국제 시장에서 페소와 헤알 가치 급락에 따른 가격경쟁 우위를 보이면서 중국 이외 시장에서도 고전하고 있다. 특히 대두의 경우 미국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브라질에 빼앗긴 상태다.
미 농무부에 따르면 올들어 5월까지 9개월간 중국 대두 공급의 77%를 브라질산이 차지했다. 이전 40% 수준에서 배 가까이 시장점유율이 높아졌다.

트럼프는 내년 대통령 재선을 앞두고 자신의 핵심 지지계층이자 표밭인 농민들을 다시 끌어들이겠다는 의도가 뚜렷하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이번 관세가 농민들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그동안 자국 통화 가치를 대규모로 평가절하해 왔다"면서 "이는 우리 농민들에게 좋지 않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이어 "따라서 나는 즉각적으로 이들 국가로부터 미국에 수출되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재부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난 2018년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국과 유럽을 비롯한 '동맹'국들에서 수입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 관세를 물리기로 결정한 트럼프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대해서는 수출물량을 제한한다는 조건으로 관세를 면제해준 바 있다.

'환율조작' 근거 없다
트럼프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농산물 수출을 견제하기 위해 '환율조작'을 근거로 철강·알루미늄 관세 보복에 나섰지만 이들 국가가 환율을 조작했다고 보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우선 미 재무부가 매년 환율조작국 지정과 관련해 작성하는 보고서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 페소와 브라질 헤알 추락은 성장세에 대한 우려와 정치적 불확실성, 그리고 신흥시장 통화에 대한 달러 강세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시작된 경제위기로 IMF 구제금융까지 받고 있다. 심각한 경제·외환 위기 속에 페소가 추락하고 있다.

브라질 환율조작, 시장개입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상파울루 ASA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카를로스 카왈은 "브라질은 오랫동안 자유변동 환율제를 유지해오고 있다"면서 "헤알은 금리 하락세와 신흥시장 통화에 대한 달러 강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말대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외환시장에 개입한 적은 있지만 이는 달러를 사들여 자국 통화가치 하락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평가절하가 아닌 페소와 헤알 급락세를 진정시키기 위한 달러 매도였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통화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보유외환에서 달러를 내다 팔아 페소와 헤알을 사들인 바 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EII)의 모니카 드 볼레 선임 연구위원은 브라질, 아르헨티나 모두 환율조작을 하지 않았다면서 트럼프의 관세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 볼레는 관세로 인해 이들 국가 수출이 충격을 받으면 "이들 나라 통화 가치는 불가피하게 (더)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시장은 충격
중국과 '1단계 무역합의'에 접근하고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금융시장은 이날 오전 미 제조업 둔화가 재확인되면서 1차 충격을 받은데 이어 트럼프의 관세 부과 조처에 따른 무역전선 확대라는 2차 충격을 받으며 크게 요동쳤다. CNBC에 따르면 이날 뉴욕증시 3대 지수는 1% 안팎의 급락세로 마감했다. 시황을 가장 잘 반영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10월 8일 이후 약 2개월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뉴욕증시 '공포지수'로 부르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 역시 12.6에서 14.3으로 뛰었다.

앞서 공급관리협회(ISM)이 공개한 지난달 미 제조업지수는 시장 전망을 밑돌며 미중 무역전쟁 충격에 대한 월가의 불안감을 다시 높였다.
ISM 제조업지수는 신규주문, 수출둔화 여파로 10월 48.3에서 11월 48.1로 더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통해 미 제조업과 농업을 끌어올리겠다고 다짐했지만 그의 주장과는 반대로 무역전쟁이 미 제조업과 농업을 피폐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철강·알루미늄 관세의 경우 제조업 둔화에 따른 수요감소로 값이 오르기는 커녕 추락하고 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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