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민 칼럼]

넷플릭스·디즈니·웨이브, 뭘 보실래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27 17:24 수정 : 2019.11.27 17:51

디즈니, 넷플릭스에 도전장
토종 웨이브만으론 역부족
규모의 경제 가능하게 해야

시작은 넷플릭스다. 지난 1997년 비디오·DVD 우편배달 서비스로 출발한 넷플릭스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처음 시작한 건 2007년의 일이다.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는 자신들의 롤모델이나 다름없던 대형 비디오 대여업체 블록버스터를 찾아가 신규사업 인수를 제안한다. 하지만 블록버스터의 대답은 "너나 잘~하세요". 보기좋게 퇴짜를 맞은 넷플릭스는 오프라인 사업을 대폭 줄이고 온라인 사업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며 홀로서기에 돌입한다.
그리고 정확히 3년 뒤, 오프라인 매장 확장에 온 힘을 쏟던 블록버스터가 결국 파산한다. 한낱 양치기 소년에 불과했던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무너뜨린 순간이다.

블록버스터를 따라 하는 패스트 팔로어에서 OTT시장을 개척한 퍼스트 무버로 등극한 넷플릭스는, 그러나 이제 쫓기는 신세가 됐다. 넷플릭스를 비롯해 아마존 프라임, 훌루 등 3개 업체가 경쟁하던 미국 OTT시장에 애플(애플TV·11월 1일)과 디즈니(디즈니플러스·11월 12일)가 연이어 도전장을 내밀면서다. 또 '왕좌의 게임' 같은 초특급 콘텐츠를 보유한 워너미디어의 HBO맥스와 NBC유니버설의 피콕도 내년 상반기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말 그대로 OTT 전쟁의 서막이 활짝 열린 것이다.

시장은 이 중에서도 '콘텐츠 공룡' 디즈니의 출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0일 기사에서 "디즈니플러스는 북유럽 신화 속 '천둥의 신'이자 마블 캐릭터의 하나인 토르가 휘두르는 마법망치와 같다"면서 "디즈니플러스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바뀌는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간도 "디즈니플러스가 넷플릭스와의 경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2년 뒤 디즈니플러스의 글로벌 가입자 수를 넷플릭스(1억5800만명)보다 많은 1억6000만명으로 예상했다.

다급해진 건 넷플릭스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현재 넷플릭스에 가입한 이용자의 30%는 새 OTT로 갈아타기 위해 넷플릭스를 해지할 수 있다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47%는 만약 새 OTT에 가입한다면 디즈니플러스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케이블TV 등 기존 유료방송 가입자들이 넷플릭스 등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동하면서 발생한 '코드 커팅(Cord Cutting)' 현상이 또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OTT 전쟁이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2016년 이미 국내에 진출해 우리 OTT 시장의 상당부분을 장악해가고 있다. 디즈니의 시간표대로라면 디즈니플러스의 국내 상륙도 머지않았다. 디즈니는 올해 안에 호주·뉴질랜드에서 서비스를 시작하고 내년 3월 영국·독일·프랑스, 내년 하반기 일본, 2021년 한국에 진출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아직 정확한 일정표가 나오진 않았지만 애플TV나 HBO맥스 등 후발 OTT의 국내 진출도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국내 업계는 세상을 지배하는 거인의 등에 올라탈 것인지, 거인과 맞대응하기 위해 몸만들기에 나설 것인지 여전히 명확한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눈치다. 지난 9월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는 기존에 운영하던 토종 OTT를 통합해 '웨이브'라는 신규 플랫폼을 내놨다. 그러나 여전히 역부족인 듯한 느낌을 지우긴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이달 초 공정거래위원회가 LG유플러스와 CJ헬로,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합병을 승인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글로벌 OTT와 경쟁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기업이 무엇이든 해볼 수 있도록 혁신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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