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염주영 칼럼] 한국이 저성장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25 17:44

수정 2019.11.25 17:44

인구 감소 올가미에 걸려들어
일본형 불황 초기단계에 진입
노동개혁으로 생산성 높여야
[염주영 칼럼] 한국이 저성장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한국의 인구시계에서 중요한 변곡점 두 개를 꼽는다면 2018년과 2028년이다. 2018년은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가 줄기 시작한 해다. 2028년은 통계청이 총인구 감소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는 해다. 이에 해당하는 일본의 인구변곡점은 1995년과 2010년이었다. 일본은 1995년에 생산인구가, 2010년에는 총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1995~2010년 사이에 일본 경제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앞으로 10년 한국 경제에 어떤 변화가 닥칠지, 거기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미리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는 1985년 플라자 합의로 미국으로부터 환율폭탄을 맞았다. 그러고도 한동안은 건재했다. 1990년에도 4.9%나 성장했다. 일본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전반이다. 거품붕괴와 함께 긴 저성장 터널에 진입했다. 연평균 성장률이 1%대에 머무는 저성장 시대가 10년 이상 계속됐다. 이 기간은 생산인구가 정점을 통과해 줄어들기 시작한 시기였다. 한국으로 치면 지금이다.

일본 경제는 이후에도 계속 침몰했다. 2005~2009년에는 연평균 성장률이 -0.3%를 기록하며 혹독한 마이너스 성장기에 들어갔다. 2010년 이후에도 플러스 성장을 회복하긴 했지만 저성장은 여전했다. 아베 집권 6년간(2013~2018) 연평균 성장률은 1.1%에 불과하다. 아베 정부가 마이너스 금리를 내세워 무차별적으로 돈을 찍어내고 있지만 일본 경제는 인구감소 태풍을 견뎌내지 못하고 있다. 인구감소는 그만큼 무서운 재앙이다.

한국 경제로 시선을 돌려보자. 올해 성장률이 1%대까지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최근 1년간(2018년 4·4분기~2019년 3·4분기) 0%를 기록했다. 지난 9월에는 마이너스(-0.4%)까지 떨어졌다. 한국 경제는 생산인구 감소가 시작됐던 1995년 전후의 일본 경제와 닮아 있다. 아직 디플레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일본형 저성장·저물가 터널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부터는 생산인구 감소라는 올가미에 걸려들었다. 앞으로 총인구 감소(2028년)까지 9년밖에 남지 않았다. 재앙을 향한 질주를 멈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해법은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는 시간당 평균 33달러(2016년 기준)의 가치를 창출한다. 이는 미국의 52%, 독일의 55%, 일본의 79% 수준이다. 35개 회원국 중 27위에 머물고 있다. 이런 속에서 한국 경제가 세계 11위까지 성장한 것은 기적이다. 기적은 낮은 생산성을 장시간 노동으로 메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더 이상은 기적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생산인구 감소와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앞으로 총노동시간(취업자수×노동시간의 총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낮은 생산성으로 짧은 시간 일하면 결과는 뻔하다. 저성장 아니면 마이너스 성장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뉴욕시립대 교수)은 "생산성이 전부는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거의 전부"라고 말했다.
경제성장은 단기적으로는 거시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결국에는 생산성에 수렴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성장을 계속하려면 노동의 저생산성 구조를 바꿔야 한다.
한국 경제의 노동개혁이 시급하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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