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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아세안]④북한과도 친하다고?…'중립적 위치' 주목

뉴스1

입력 2019.11.17 06:30

수정 2019.11.17 06:40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8년 9월19일 오후 평양 만수대창작사를 찾아 김성민 창작사 부사장의 안내를 들으며 실물같은 밀랍인형을 감상하고 있다.2018.9.19/뉴스1 © News1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18년 9월19일 오후 평양 만수대창작사를 찾아 김성민 창작사 부사장의 안내를 들으며 실물같은 밀랍인형을 감상하고 있다.2018.9.19/뉴스1 © News1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11일(현지시간) 싱가포르 대표 복합 문화공간 에스플러네이드에 도착해 머라이언파크 야경 관람을 마친 후 쥬빌리 다리를 내려오고 있다. 2018.6.12/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11일(현지시간) 싱가포르 대표 복합 문화공간 에스플러네이드에 도착해 머라이언파크 야경 관람을 마친 후 쥬빌리 다리를 내려오고 있다. 2018.6.12/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제봉 태국 주재 북한대사가 2019년 8월2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기념촬영에서 앞뒤로 서있다. 2019.8.2/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제봉 태국 주재 북한대사가 2019년 8월2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기념촬영에서 앞뒤로 서있다.
2019.8.2/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서울=뉴스1) 조소영 기자 =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 항간에서 북한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런 북한과도 깊은 친분을 맺은 나라들이 있으니, 그 나라들은 바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이다. 브루나이와 캄보디아, 인도네시아와 라오스, 말레이시아와 미얀마, 필리핀과 싱가포르, 태국과 베트남까지 아세안 10개국은 모두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다.

같은 핏줄에, 같은 언어를 쓰고 있으면서도 북한과 70년 분단 역사를 쓰고 있는 우리로서는 아세안과 북한의 친분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동시에 남북한 모두와 친분을 갖고 있는 아세안의 '중립적 위치'는 한반도 평화에 도움을 줄 조력자로서의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北도 특별정상회의 부르자"…각별한 아세안과 北

결국 무산된 듯 싶지만 이번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가장 눈길을 모았던 주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의가 열리는 부산에 올까' 하는 것이었다. 왜 이런 주제가 촉발됐는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중심에는 아세안 국가들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가 있다.

지난해 11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2차 한·아세안 정상회의 당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한국과 북한이 함께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하게 되면 그 의미가 더 살아날 것"이라며 "이런 노력이 가시화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남북·북미관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무르익었던터라, 문재인 대통령도 "주목되는 제안"이라며 이를 받았다.

없던 자리도 마련해 챙겨줄 정도로, 아세안과 북한은 왜, 얼마나 친한걸까. 우선 동남아 국가들이 갖고 있는 외교적 특징이 이유로 꼽힌다. 동남아 국가들은 대체적으로 주변 국가들과 적대적 관계를 맺지 않으려 하고 이는 그들의 생존 방식으로 일컬어진다. 태국과 필리핀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전쟁 땐, 1만1000여명 규모의 병력으로 한국전에 참전해 대한민국을 도왔던 나라들이다.

또 하나는 역사적인 면이다. 북한과 동남아 국가들은 식민시대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반식민-반제국주의 노선 속에서 연대를 했다. 물론 이 노선을 지지하던 아시아 국가들이 주축이 돼 만든 비동맹운동(NAM·Non-Aligned Movement)에 북한이 포함된 건 1976년 때였지만, 북한은 그전부터 비동맹운동 주요국가 지도자들과 친분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전 대통령은 고(故) 김일성 주석이 1965년 인도네시아를 방문했을 당시, 인도네시아 마카사르(Makassar)산 난초에 김 주석의 이름을 붙여줬다. 이후 이 난초는 김일성이아(Kimilsungia)로 불렸다. 북한에서는 지금도 김 주석 추도식 등 주요 행사에 이 꽃을 쓴다. 노로돔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 또한 김 주석과 친분이 있던 인사다. 수도 프놈펜의 한 거리에 김일성 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두 사람의 각별한 관계를 대변한다.

북한은 베트남 전쟁에서 북베트남을 간접 지원했고 호치민과 김 주석은 각각 1957년 평양, 1958년 하노이를 방문한 바 있다. 한국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요청으로 남베트남에 약 31만명의 국군을 파병한 적이 있다. 국가 간 수교관계를 넘어 북한은 베트남, 라오스와는 다른 국가와는 달리 당대당 관계가 존재하기도 한다. 베트남 공산당과 북한의 노동당, 라오스 인민혁명당과 북한 노동당 사이 당 차원의 교류가 있다.

북한의 10대 무역 대상국 안에 태국과 싱가포르가 포함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북한의 대외무역 대부분은 중국과의 무역이지만, 태국과 싱가포르는 거의 매년 4~6위 사이를 오가는 북한의 주요 무역 대상국 중 하나다. 싱가포르는 북한을 출발한 선박이 자주 들르는 국가 중 하나다. 필리핀 또한 북한에서 철강 관련 제품을 주로 수입하고 전기기기와 음향, 영상설비를 수출한다.

사회문화 및 인적교류면에 있어서도 동남아 국가들과 북한 간 관계가 작지 않다. 북한 만수대창작사가 만든 캄보디아 시엡립의 그랜드파노라마박물관이 대표적이다. 이 박물관 건립에는 북한 예술가 50여명이 동원되고 북한이 건설비 1500만 달러를 투입했다. 북한은 싱가포르인 관광객 모집을 위해 웹사이트를 개설하기도 했고 말레이시아 등에서도 관광객을 모집 중이다.

말레이시아 소규모 사립대학인 헬프대학교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경제학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최고 대학인 인도네시아대학교는 북한과 2016년 교류협력관계를 맺은 바 있다. 김 위원장은 2018년 인도네시아 평화상도 받았다.

미얀마와 북한은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한 차례 수교를 끊었다가 2007년 복교했다. 아웅산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미얀마는 우리 정부는 물론 북한과도 수교국이었다. 브루나이와 북한은 1999년 1월 외교관계를 맺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2차 북미회담 모두 아세안에서…'우호적 충고'할 유일 세력

아세안과 북한 간 친분은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 과정에 있어서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1·2차 북미정상회담은 각각 싱가포르와 베트남에서 열렸는데, 북한의 입장이 상당 부분 고려된 것으로 읽혔다.

싱가포르는 북미 모두와 가까운 정치적 중립지대일 뿐만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의 전용기인 참매 1호로 비행이 가능한 거리로 알려진 바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참매 1호의 기종 노후와 장거리 운항 경험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한 듯 실제로는 참매 1호 대신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소속 보잉 747기 편을 통해 싱가포르로 향했다.

베트남에서 열린 정상회담은 당초 다낭에서 열릴 것으로 전망됐었으나 최종 낙점지는 하노이였다. 이는 하노이에 북한 대사관이 있다는 점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됐다. 김 위원장이 하노이에 도착해 가진 첫 일정은 북한 대사관 방문이었다.

무엇보다 그저 아세안이라는 점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다. 북한이 외교·안보적으로 신뢰를 갖고 있는 곳이란 점에서다. 북한이 지역 다자안보협력면에 있어 유일하게 참여하는 기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ASEAN Regional Forum)이다. 한국은 1994년 ARF 창립 당시부터 회원국이었고 북한 또한 창설 당시부터 참여하려 했으나 번번이 시도가 좌절됐다. 북한은 2000년 마침내 ARF에 진입했다.

사실 현재 북한과 동남아 국가 간 관계는 적극적 협력이라기보다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관성 유지 정도로 보는 게 적당하다는 풀이가 중론이다. 주쿠알라룸푸르 북한 대사관과 주평양 말레이시아 대사관은 2017년 '김정남 피살사건' 이후 사실상 기능 정지 상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이 북한과 '꾸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는 우리 정부가 남북 모두와 친분이 있는 '중립적 입장'의 아세안을 가교로 한반도 평화 증진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조언이다.

북한의 비핵화까지 가는 단계는 미중 간 패권경쟁이 얽혀있어 동남아 국가들의 역할은 큰 변수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동남아 국가들과 북한 간 교류관계를 본다면 동남아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로 불리는 북한에 '우호적 충고'를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세력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관계를 활용해 북한이 비핵화를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혜택 및 미래에 대한 충고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86년 도이모이(doimoi·쇄신) 이후 베트남, 2011년 정치적 자유화 이후 미얀마는 북한이 개방과 개혁을 원할 때 무엇이 필요할지 잘 알고 있는 국가들이라고 볼 수 있다.


동일선상에서 아세안은 북한이 국제사회와 본격 교류할 발판을 만들 나라들이기도 하다. 이는 북한의 대외 개방에 있어 불가역적 효과를 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7월 '싱가포르 렉처'에서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진정성 있게 실천해나갈 경우, 아세안이 운영 중인 여러 회의체에 북한을 참여시키고 북한과의 양자 교류 협력이 강화되길 바란다"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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