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수능, 그땐 그랬지

이유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14 16:43

수정 2019.11.14 16:43

[기자수첩]수능, 그땐 그랬지
지난 1997년 늦가을, 수학능력시험장에 들어가면서 기자는 어머니가 주신 청심환을 먹고 시험을 봐야만 했다. 경찰차를 타고 시험장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고, 수능에 대한 압박감도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 시험이 끝난 다음 날 등굣길에 조간 신문에 나온 해답지를 보고 가채점을 해보면서 점수가 예상보다 높아서 환호했다. 하지만 학교에 도착해보니 친구들 대다수 역시 점수가 크게 상승했고, 그날 저녁 뉴스에서 전체적인 수능 평균이 전년 대비 40점 이상 올랐다는 얘기에 허탈해하기도 했다.

오늘 수능을 마치고 가채점을 해볼 고3 학생들의 심정이 당시 내 심정과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여전히 남아 있는 대학 서열화 간판 속에서 학생 개개인마다 성취감과 실망감이 엇갈릴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수능이 결정하는 것은 딱 거기까지다. 대학의 간판이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물론 당시 수능성적으로 내가 원하던 학교에 합격하지는 못했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의 원하는 학과에 입학했다. 20살 이후 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수능 점수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대학 이후 본인이 원하는 직업 또는 꿈을 이루려면 앞으로 더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

대학 입학 이후 나 역시 기자가 되기 위해 여러가지 스펙을 준비해야만 했고, 중간에 시행착오도 겪었다. 수능보다 더 어려운 취업시험을 겪었다. 하지만 이 시험에서 수능이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정확히 회사는 내가 어떤 대학을 다녔는지보다 내가 기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왔느냐에 관심을 가졌다. 다른 직업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쨌든 지난 초·중·고 12년의 학업성적을 평가한다는 2020학년도 수능은 끝났다. 고3 학생이든, 재수생이든 올해 수능을 위해 쉴 새 없이 달려온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수험생들은 두 가지만 기억해주면 좋을 것 같다. 청소년이 아닌 성인으로서의 인생 2막이 곧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 20년 후쯤 오늘 본 수능을 카니발의 노래 제목 '그땐 그랬지'처럼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leeyb@fnnews.com 이유범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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