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 톡]

韓 국회의장과 日 대학생들의 만남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08 17:08 수정 : 2019.11.08 17:08
지난 5일 늦은 오후 도쿄 신주쿠구 와세다대에서 열린 문희상 국회의장의 특별강연장.

문 의장은 이곳에서 이른바 '문희상 안(案)'으로 불릴만한 강제징용 해법을 제시했다. 제1의 청자는 미래 일본사회의 주역인 일본 대학생들이었으나, 이들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보도사진들은 일제히 학생들의 뒤통수만 나왔다. 강연장 안팎엔 긴장감이 흘렀다.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우익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건물 곳곳에 경호원들이 배치됐다.

지난달 이낙연 국무총리가 게이오대에서 한 '일본 젊은이들과의 대화' 행사 사진 역시 학생들의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 역시 뒷모습 일색이었다. 이유인즉슨, 자칫 그 자리에 있던 학생들이 일본 우익의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한 대학 측이 학생 보호차원에서 정면 샷을 찍지 말아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은 대한민국 국가의전서열 2위이고, 내각을 통할하는 위치에 있는 국무총리는 서열 4위다. 이들과의 만남에 있어 '학생 경호'는 한·일 갈등에 대한 일본 내 분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받아들여진다.

도쿄 신바시에서 낡은 선술집을 하는 한 한국인 여성은 "일본에 온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요즘처럼 일본에서 사는 게 불안한 건 처음"이라고 푸념했다. "이제보니, 한국 정부의 억지 주장과 네가 과거 보였던 행동이 같구나." 오랜세월 친분을 쌓았던 일본인 친구에게 최근 들은 말이라고 했다.

내셔널리즘은 '강한 전염성과 쾌감'을 수반한다. "지금의 한·일 갈등은 정부와 정부 간의 일이고, 개인 간에는 상관없다"고 말하는 성숙한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의 분위기라면 반한감정이 쏠림현상으로 나타나는 건 시간 문제다.

20년 전, 대학시절 일본 대학생들과 모임을 한 적이 있다. 양국 대학생들 간 환경 연대를 꿈꿨던 자리였다. 일부는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내가 느끼는 친구로서의 감정과 그들이 한국인인 나를 바라보는 감정이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우리들 사이엔 부인할 수 없는, 한국인·일본인이란 필터가 끼워져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집으로 초대해서 따뜻한 밥 한끼를 대접한다든가, 아이들이 크는 이야기를 하고, 워커홀릭인 남편에 대해 불평을 털어놓기도 하며, 서로가 모르는 일상의 한국과 일본에 대해 얘기한다.

내 20년간에 걸친 인연처럼,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만나 교류하는 얘기는 이 세상에 차고 넘친다.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이 연간 700만명,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이 300만명인 시대다. 산술적으로는 연간 수백만개의 만남과 접촉이 펼쳐지는 것이다.

반면, 정부 간 라인은 너무도 빈약했다. 청와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그 카운터파트인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 국장 간 양자 단독 회동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이후인 8월 중순 도쿄에서의 만남이 거의 처음이다시피했다고 한다. 야치 국장이 9월 초 물러났으니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세간에서 얘기하는 '정의용·야치 라인'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라인의 단절'은 한국의 대일정책·일본의 대한정책의 상호 부재를 나타낸다. 그 자리를 메운 반한과 반일은 위험 수준이다. 지지율이나 끌어올리려 감정만 자극한다면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수백만 건의,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간 만남과 접촉이 실시간으로 이뤄지고 있는 지금 시대에 말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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