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情]

"40년간 길에서 생선 팔아 살았지" 어느 노점상들의 겨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09 10:00 수정 : 2019.11.09 10:00

하루 수입 3만원 안팎…수십 년을 길에서 버틴 70~80대 노점상
서대문구, 저소득 노점상 대상으로 부스 설치…'일정 부분 상권 인정'

서울 서대문구 한 재래시장 인근에서 노점을 하고 있는 노인들. [사진=윤홍집 기자]

[편집자 주] '노인情'은 지금을 살아가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한 재래시장.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옷을 겹겹이 껴입은 노인들이 길가에서 야채를 팔고 있다.

이 지역 노점에서 야채나 생선을 파는 노인들은 70~80대가 대부분이다. 짧게는 20년에서 길게는 45년까지 수많은 여름과 겨울을 길에서 보냈다.


젊었을 때 벌인 사업이 망해서, 십여 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이 술만 먹고 일을 안 해서, 애초부터 돈이 없어서 등 노점을 시작한 계기는 제각각이지만 하루 벌어들이는 수익은 엇비슷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지하철 첫 차를 타고 한나절 장사를 해 남는 돈은 하루 3만원 안팎. 들어가는 노동에 비해 수입이 높지 않음에도 이들은 노점이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입을 모았다.

올해 79세로 약 45년간 노점을 했다는 A씨는 "돈은 없고 남편이 일을 안해서 서른 살부터 생선을 팔았다"며 "어떻게 사나 싶을 때도 있었는데 40년을 넘게 버텼다. 아들·딸 학교 보내고 결혼까지 시켰으니 생선 팔아 내 할 일은 다 한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장사가 잘 안돼도 어쩌겠나.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평생 이것만 했는데"라며 "오늘도 새벽부터 첫차 타고 노량진 시장 가서 60만원 어치 떼어왔는데 5만원도 팔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A씨는 3년 전 무릎 관절 수술을 받아 다리가 편치 않다. 그는 수술 받은 이후에도 일주일에 6일씩 쉬지 않고 노점을 해왔다.

서대문구는 2년 전 저소득층 노점상을 대상으로 도료 사용료 등을 받고 부스를 설치해줬다. [사진=윤홍집 기자]

같은 길에서 야채를 팔고 있는 77세 B씨는 김장철이라 평소보다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B씨는 "3만원 짜리 무 한 박스 팔아 4000원 벌고 3000원 짜리 열무 한 단 팔아 500원 남긴다"며 "우리 나이에 어디가서 이 돈 벌기 쉽지 않다. 이거라도 벌어야 밥 값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하던 기자는 B씨에게 쪽파 한 단을 건네받아 다듬었다. 쪽파 뿌리를 자르고 껍질을 벗기는 단순한 일이지만 눈이 맵고 손이 많이 갔다. B씨는 다듬기 번거로운 만큼 노동비 몇 백 원 붙여 팔 수 있다며 빠르게 쪽파 뿌리를 잘랐다.

서대문구청은 약 2년 전부터 재산이 적은 노점상을 대상으로 도로 사용료를 받고 부스를 설치해주고 있다. 오랫동안 무허가 신세로 눈칫밥을 먹던 노점상들은 일정 부분 상권을 인정받게 됐다.

사용료는 1년에 약 55만원으로 전기세는 별도다. 한 평 남짓의 작은 부스지만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야 하는 노점상에겐 값진 공간이다.

약 20년 간 노점으로 과일을 팔고 있는 C씨는 "겨울이 되면 얼굴에 얼음이 배겨 빨갛게 달아오른다"며 "콘센트가 없어서 난로를 못 켰고 지붕이 없어서 비나 눈이 올 때면 전봇대에 천막을 연결했다. 지금은 부스가 있어서 형편이 많이 나아졌다"고 웃었다.

그는 "노점상은 물건을 둘 공간이 없어서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 새벽에 물건 떼고 정리하려면 잠 잘 시간도 별로 없다"며 "남들보다 고생해도 어쩌겠나. 가게 차릴 돈이 없는데. 이거라도 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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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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