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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더하기 전설…차붐이 닦아 놓은 길, 손흥민이 넓히다

뉴스1

입력 2019.11.07 13:37

수정 2019.11.07 13:37

축구대표팀 에이스 손흥민이 2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출정식에서 차범근 전 감독과 함께 런웨이에 오르고 있다. 2018.5.21/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축구대표팀 에이스 손흥민이 2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출정식에서 차범근 전 감독과 함께 런웨이에 오르고 있다. 2018.5.21/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임성일 기자 = 척박했던 시절,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감 자체가 유럽에서 그리 대단치 않았던 때 혈혈단신으로 독일 분데스리가로 진출해 '차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차범근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축구사의 레전드다.

그때 독일 분데스리가는 당대 최고의 무대였다.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위상이 당시는 분데스리가의 몫이었다. 세계의 별들이 모두 모인 곳에서도 차범근은 톱클래스로 10년을 활약했고 지금까지도 '전설'로 회자되는 큰별이었다.


1978년 다름슈타트에 입단하며 독일 무대를 밟은 차범근은 이듬해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해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그리고 레버쿠젠에서의 활약상을 더해 유럽을 호령했다. 그가 유럽에서 작성한 득점만 121골이었다. 당연히 한국인이 유럽에서 기록한 최다득점은 차범근의 몫이었고 모두들 그 기록은 불멸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깨졌다.

손흥민이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손흥민은 7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 위치한 라이코 미티치 스타디움에서 열린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B조 조별리그 4차전에 선발로 출전, 2골을 터뜨리며 4-0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손흥민은 1-0으로 불안한 리드를 지키고 있던 후반 13분 박스 안에서 강력한 왼발 슈팅을 시도해 즈베즈다 골망을 크게 흔들었다. 한국 축구사에 새로운 획이 그어지던 순간이다. 이 경기 전까지 개인통산 121골을 기록 중이던 손흥민은 122번째 득점과 함께 한국인 유럽무대 최다득점자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손흥민의 활약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불과 2분 뒤 대니 로즈의 낮은 크로스를 가볍게 밀어 넣으며 멀티골까지 작성했다. 시즌 6, 7호골을 동시에 작성하며 통산기록도 123골까지 늘렸다. 손흥민의 맹활약을 앞세운 토트넘은 결국 4-0 완승을 거두며 UCL 2연승에 성공했다.

현재의 축구팬들이야 동시대를 살면서 눈으로 직접 활약상을 보고 있는 손흥민에게 응원의 마음을 담은 박수를 보다 많이 보내고 있지만, 과거 유럽무대 전체를 호령했던 '차붐'의 플레이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아직은 비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한 축구인은 "사실 한국인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정표를 남긴 것이다. 차범근 감독이 유럽에 나간 것이 1980년대다. 그때 우리나라에는 변변한 잔디구장도 없었다. 그런 곳에서 자란 선수가 유럽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올라섰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는 표현으로 위업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게 꿈처럼 느껴지던 그 지점에, 적어도 득점 기록만은 전설을 넘어선 손흥민이다. 하지만 '기록'만 가지고 "손흥민이 차범근을 앞섰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다. 차범근은 영원한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 그대로다. 전설이 닦아 놓은 길을 더 넓힌 새로운 전설 손흥민이 탄생했다고 짚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최근 차범근 감독에게는 큰 경사가 찾아왔다. 주한독일대사관은 지난 5일 "수십 년 동안 한국과 독일의 관계 발전을 위해 애쓴 차범근 전 감독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이 차 전 감독에게 대십자공로훈장을 수여했다"고 밝혔다.

대십자공로훈장은 정치, 경제, 사회, 사회복지, 자선 등의 분야에서 독일을 위해 특별한 공로를 세운 이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한국인으로는 고 김수환 추기경(2001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2005년) 등이 수상한 바 있다. 차범근의 업적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단순한 축구선수, 그 이상이다.

그런 차범근이 누구보다 아꼈던 선수가 까마득한 후배 손흥민이다.
위대한 전설이 흐뭇하게 바라볼 또 하나의 전설이 점점 더 무르익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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