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예금보다 못한 퇴직연금… 은행들은 가입자 늘리기에 급급[노후 위협하는 퇴직연금]

최종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20 17:15

수정 2019.10.20 17:15

수익률 연평균 1%대 그쳐
은행들 과도한 실적경쟁으로
개인형 퇴직연금 46%가 깡통
예금보다 못한 퇴직연금… 은행들은 가입자 늘리기에 급급[노후 위협하는 퇴직연금]
퇴직연금 수익률 부진이 이어지면서 노후 대비에 경고등이 켜졌다. 퇴직연금 시장이 200조원 규모로 커졌지만 수익률이 여전히 연평균 1%대에 그쳐 '쥐꼬리'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일부 가입자는 오히려 손실을 본 것으로 집계됐다. 원리금비보장형은 3년·5년 장기수익률도 예금 금리보다 못한 형편없는 수준이다. 올해 들어 은행들이 수수료를 낮추거나 퇴직연금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여전히 고객 수익률은 뒷전인 채 가입자 유치 경쟁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디폴트옵션·기금형 퇴직연금 논의도 확산되고 있지만 국회 공전으로 실질적 도입에는 '산 넘어 산'이다.


■퇴직연금 수익률, 예·적금보다 부진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퇴직연금은 전체 규모가 200조원에 달한다. 지난해에만 21조6000억원 늘어나는 등 성장세가 가파르다. 판매사는 지난해 말 기준 은행 점유율이 50.7%로 가장 높고 생명보험 22.7%, 금융투자 19.3%, 손해보험 6.1% 순이다.

문제는 가파르게 커지는 규모에 비해 수익률이 형편없다는 점이다.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NH농협·IBK기업은행 등 6개 은행의 퇴직연금 확정기여형(DC) 단순 평균 1년 수익률은 지난 9월 말 기준 1.60%로 전분기(1.66%)보다 0.06%포인트 낮아졌다. 같은 기간 개인형 퇴직연금(IRP) 수익률은 1.30%로 전분기(1.49%)보다 0.18%포인트 떨어졌다. 1년 만기 적금상품보다도 못한 수익률이다.

수익률이 부진한 이유 중 하나로 가입자들의 이해부족이나 무관심을 꼽을 수 있다. DC형이나 IRP의 경우 운용할 상품을 결정하는 주체는 가입자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행들의 미흡한 대처도 문제다. 은행 등 금융사는 가입자에게 적립금 운용방법을 제시하고,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정확한 상품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은행들의 행태는 고객 수익률 관점보다는 실적 쌓기에 매몰돼 있다.

■은행, 가입자 유치에만 '혈안'

올해 초 주요 시중은행들은 수수료를 대폭 낮추거나 손실이 날 경우 수수료 자체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등 퇴직연금 개편안을 앞다퉈 내놨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퇴직연금 가입자 늘리기에만 치중하는 영업관행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정재호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기준 IRP 계좌에 적립금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깡통계좌가 172만7980개로 전체의 45.8%를 차지했다. 은행들의 과도한 실적경쟁 탓이다. A 시중은행 관계자는 "10월만 하더라도 과도한 목표치를 주고 IRP 가입자를 유치하라는 할당이 내려왔다"고 말했다.

최근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DLS) 불완전판매 논란 등 투자상품을 판매하기가 어려워지자 일부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IRP 가입자 유치전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KPI(성과평가지표)를 퇴직연금 금액목표나 가입자 수 중심에서 수익률 관점으로 전환하는 등 개선작업이 필요하다"며 "실적 중심인 영업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폴트옵션 등 논의 확산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디폴트옵션과 기금형 퇴직연금 관련 논의도 확산되고 있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따로 운용지시를 하지 않아도 금융사가 적립금을 알아서 운용하는 제도다. 조만간 논의를 거쳐 입법이 진행될 예정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DC형·IRP 가입자 대부분 운용지시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수익률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은행보다는 금융투자업계를 중심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기금형 퇴직연금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기업이 단독 또는 다른 회사와 연합해 설립한 수탁법인에서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영하는 제도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수익률을 제고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4월 정부 입법으로 발의됐지만 국회에 계류돼 관련 논의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cjk@fnnews.com 최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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