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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총리 일왕 즉위식서 건넬 메시지는…그동안 발언 살펴보니

뉴스1

입력 2019.10.14 13:50

수정 2019.10.14 13:50

이낙연 총리가 아베 총리와 러시아 극동대학교에서 면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이 총리 페이스북)2018.9.11
이낙연 총리가 아베 총리와 러시아 극동대학교에서 면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이 총리 페이스북)2018.9.11


이낙연 국무총리가 와타나베 히데오 일한협력위원회 회장대행과 악수를 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와타나베 히데오 일한협력위원회 회장대행과 악수를 하고 있다.

(서울=뉴스1) 김현철 기자 = 이낙연 국무총리가 오는 22일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식에 정부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면서 지난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대법원 판결 이후 그가 했던 대(對)일 발언에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의 발언을 미루어 이 총리가 일본에 가서 꽉 막힌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어떠한 발언을 할지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내 대표적 '지일파'(知日派)인 이 총리의 발언은 일본이 한국 정부의 입장을 판단하는 근거로 삼는 것으로 알려져 일본에서도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이 총리의 발언에 촉각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의 그동안 대일 발언은 '우리 대법원의 판단을 인정하면서도 일본과의 관계는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로 압축된다.

이 총리는 지난해 10월30일 대법원 판결이 나온 즉시 "정부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관한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고 대법원의 판결과 관련된 사항들을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며 "한일 양국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한 바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4년 사망한 여운택씨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당시 확정했다.

이후 대법원 판결에 대한 고노 다로(河野太郞) 당시 외무상 등 일본 지도자들의 과격한 발언이 이어지자 이 총리는 같은해 11월7일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일본 정부 지도자들의 발언은 타당하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못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 총리는 "사법부의 판단은 정부간 외교의 사안이 아니다"며 "사법부는 법적 판단만 하는 기관이며 사법부의 판단에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일본 정부 지도자들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 정부 지도자들이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불만을 말할 수는 있지만 이 문제를 외교적 분쟁으로 몰아가려 함에 따라 나도 그에 대한 의견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의 이 같은 입장 발표는 앞서 고노 외무상이 "일본은 이번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일본은 한국에 모두 필요한 돈을 냈으니 한국 정부가 책임지고 (징용피해자에게) 보상해야 한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법을 뒤집는 듯한 이야기.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이라고 날선 주장을 펼치자 '도(度)를 넘은 언행을 더는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 총리가 지난 5월15일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했던 발언은 일본이 한국 정부의 입장을 판단하는 중요한 계기가 돼 수출규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됐다는 후문도 일본 내에서 들린다.

이 총리는 당시 토론회에서 "사법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사안(징용문제)에 대해서 정부의 대책이 나온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사법부의 판단에 행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는 것이고, 행정부가 대안을 내도 효과가 꼭 있으라는 보장이 없다" "행정부가 나서서 뭘 한다는 것이 삼권분립의 원칙상 맞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 발언 이후 아베 총리 관저와 정부 내 분위기가 급격하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이 이 총리의 발언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취지로도 읽힌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이 총리의 발언 뒤 징용 문제와 관련해 제3국 위원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개최를 한국에 정식 요청하기도 했으며, 고노 전 외상은 이 총리의 발언을 언급하며 "이 총리가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믿고 대응을 자제해 왔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7월 불화수소 등 반도체 관련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조치, 8월엔 수출관리상의 우대조치를 제공하는 화이트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이와 관련 일본 언론들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최종안은 5월 중에 대부분 완성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총리가 그동안 대법원의 판결을 일방적으로 일본에 강요한 것만은 아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언급하며 한일간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양국 지도자들의 지혜를 모으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1월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와타나베 히데오 일한협력위원회 회장대행을 면담하며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나왔던 때가 한일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기로, 이는 김대중 대통령의 놀라운 균형감각과 오부치 총리의 남다른 배려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1998년 10월8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으며, 오부치 총리는 이 선언에서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다.

이 총리는 이번 방일에서도 한일 갈등의 뿌리인 과거사 인식 간극에 대한 발언은 뒤로 미룬 채 한일이 '미래지향적'으로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건넬 것으로 전망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총리가 이번 방일에서 나루히토 일왕,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만나 건낼 메시지에 고심하고 있다"며 "이 계기를 활용해 양국에 유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뒤, 양국 정상이 만나 갈등을 푸는 상황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힘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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