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화제의 법조인]"정치인·공인의 모욕죄 고소, 국민을 전과자 만드는 행위"

이진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13 17:04

수정 2019.10.13 18:37

시민단체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 인터뷰
"사실적시 명예훼손·모욕은 민사 형사고소 이어지면 표현자유 위축"
손지원 변호사
손지원 변호사
"국민의 지지로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된 공인이 자신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국민을 전과자로 만드는 행태는 옳지 않다."

시민단체 오픈넷에서 활동 중인 손지원 변호사(사진·33·변호사시험 2회)는 "진영이나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인의 모욕죄 고소는 비판적인 여론을 위축시키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며 이 같이 지적했다. 오픈넷은 인터넷을 통한 자유로운 정보 흐름을 지지하고, 표현의 자유나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국가의 제재에 대해 반대운동을 펼치는 단체다.

■"반박자료 등 적극 해명해야"

앞서 조국 법무부 장관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각각 자신이 언급된 인터넷 기사에 비판 댓글을 게시한 누리꾼들을 모욕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조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70대 블로거는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나 원내대표가 고소한 누리꾼 100여명도 무더기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이에 손 변호사는 "공인들은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용인할 줄 알아야 한다"며 "막강한 공적 지위에 있는 인물일수록 법적으로 해결하지 않더라도 대외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낼 수단과 권력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허위사실이라도 반박자료를 내는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해명할 수 있다"며 "조 장관의 경우 민정수석이었다면 법무부에 대한 영향력을 직접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으므로 더 신중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나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구체적 사실 적시가 아니라 단순히 욕설을 했다는 점만으로 고소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전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돼야"

오픈넷은 궁극적으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는 위헌요소가 있으므로 폐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모욕죄와 함께 허위가 아닌 사실을 말해도 명예훼손죄의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철폐될 필요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손 변호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과 모욕죄는 전 국민을 전과자로 만들 수 있는 법제"라며 "살면서 욕 한번 안 해본 사람은 없다. 마음에 안 들면 욕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복수를 할 수 있고, 형사고소가 이어지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전 세계적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를 두고 있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극소수에 불과하다. 앞서 국제연합(UN) 자유권 규약 위원회와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도 한국 정부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를 정식으로 권고했다.

손 변호사는 "명예훼손과 모욕 등 개인간 사적분쟁은 민사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감정 배설과 편협한 생각에 기반한 의견표명을 한 것이 국가 형벌권이 개입해 처벌할 만큼 사회적 해악이 심대하다고 보여 지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가짜뉴스 처벌에 대해서도 "가짜뉴스를 신앙적으로 믿는 사람들은 국가가 나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정치적 억압이라는 불만을 품고 음성적인 사상을 더 키워나갈 수 있다"며 "토론이 활성화되는 사상의 자유 시장에서 해결해야 진실이 굳건하게 자리 잡는 효과가 있다.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는 민사적으로 더 강력한 손해배상을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일베·워마드 강제폐쇄, 효과 없어"

손 변호사는 혐오조장 사이트로 지목받는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나 '워마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강제폐쇄 추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강제폐쇄는 인터넷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장"이라면서 "문제는 플랫폼이 아니라 사람이다. 플랫폼을 폐쇄하더라도 문화가 있으면 새로운 플랫폼을 해서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단순히 표현을 막는 것은 사회적 토론을 막는 부작용만 나타날 뿐이라는 얘기다. 손 변호사는 "더 중요한건 실제적인 혐오행위나 범죄에 대한 법적 제재가 이뤄지는 것인데, 차별금지법은 통과시키지 못하면서 혐오조장 사이트만 폐쇄한다는 방안은 근시안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운터(혐오반대) 스피치가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며 "욕할 자유를 뺏을 게 아니라 혐오적 발언을 하는 사람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비판하는 환경이 있어야 자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제언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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