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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책사업 경제성 떨어져도 기준치 갓 넘긴 주관평가로 수조원 투입

장민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10 16:07

수정 2019.10.10 16:07

[파이낸셜뉴스] 지난 10여년간 경제성이 떨어져도 사업적격 판정을 받은 철도·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 대형국책사업에 투입된 예산이 무려 18조원을 넘은 것으로 나타나 혈세낭비 논란이 일고 있다.

경제성 외 평가지표로서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추진 의지,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 등 주관적 판단을 계량화한 종합평가(AHP)를 반영한 결과지만, 상당수가 기준치를 겨우 넘겨 '신중한 사업추진'이 필요한 '회색영역' 구간에 머무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정부가 예타심사 평가지표 중 경제성 비중을 낮추는 대신 정성평가에 가중치를 높이기로 하면서 향후 예타 제도가 정치적 입김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경제성 낮은 사업에 18조 투입
1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정우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제출받은 국감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0~2018년 실시된 철도 및 도로 사업 112건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비용편익분석(B/C)이 기준치인 1.0 미만임에도 예과를 통과한 사업은 26건(조건부 포함), 총 사업비는 18억6400억원으로 집계됐다.

비록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추후 지역균형 발전 명목으로 예타를 면제받은 사업 5건, 총 사업비 6조6300억원까지 더하면 25조원을 넘는 규모다.

예타는 1999년 재정을 낭비하는 무분별한 사업 추진을 막기 위해 '총 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고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원을 넘는 사업'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경제성을 평가하는 B/C와 객관적으로 정량화하기 어려운 정책성·지역균형발전 등을 측정하는 AHP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사업타당성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B/C 기준치인 1.0보다 낮아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또다른 평가지표인 AHP 종합평점이 기준치인 0.5를 넘으면서 사업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받은 것이다.

AHP는 사업추진 의지, 사업준비 정도, 정책방향과 일치성, 환경문제, 재원조달 가능성 등에 대한 설문 등 평가위원들의 판단을 종합해 계량화한 지표다.

'회색영역'에 졸속사업 우려
그러나 2010년 이래 B/C가 1.0 미만이지만 AHP는 0.5를 넘겨 예타를 통과한 사업 26건 중 24건이 AHP가 0.55 미만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사업이 졸속 추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SOC 예타 심사를 전담해온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투자관리센터는 AHP 종합평점이 0.45~0.55 구간을 '회색영역'으로 규정하고, 사업시행 여부 등 결론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실제 2011년 예타를 통과한 마산·창원·진해 도시철도 사업은 B/C가 0.88로 경제성은 기준에 미달했음에도 AHP 0.502를 받으며, KDI의 사업성 검증 문턱을 간신히 넘었다.

그러나 이후 담당 지자체가 사업 타당성이 없다고 판단해 해당 사업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예타 심사가 정치적 판단에 좌우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2016년 예타를 통과한 총 사업비 2조631억원 규모의 춘천~속초철도 사업은 B/C 0.79로 기준치에 미치지 못했지만 AHP는 0.518로 사업추진이 결정됐다.

앞서 2001년과 2010년, 2012년 예타에서 경제성 부족으로 번번이 탈락했지만 박근혜 정부가 지역공약사업으로 채택한 이후 재심사에 착수한 결과 예타를 통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인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공약 1호였던 남부내륙선 철도건설은 2017년 예타심사 결과 B/C 0.72, AHP 0.429로 평가지표가 모두 기준치에 미달했지만 올초 정부가 실시한 예타면제 대상에 포함돼 사업추진이 가능해졌다.

특히 정부가 올해 비수도권 지역에 대해 경제성 평가 비중을 낮추고, 지역균형 가중치를 높이는 개편안을 발표하는 등 향후 예타가 정치적 판단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예타를 통과하면 막대한 국가재정을 투입하는 길이 열리게 되는 만큼 원칙적으로 경제성 평가를 엄격하게 해야 한다"며 "객관적 평가지표를 완화해 국책사업을 무리하게 벌려놓고, 예타면제까지 무분별하게 확대되면 재정 비효율이 커질 뿐 아니라 정치적 입김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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