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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은행나무와 대기업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08 16:47

수정 2019.10.08 18:19

[여의나루]은행나무와 대기업
은행나무가 미움을 받는 시절이다. 도시 주요도로의 가로수로 그리고 공원과 아파트 단지의 경관용 나무로 많이 심는 은행나무는 이때만 되면 많은 사람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 일쑤다. 이 나무들이 지금 마구 떨구고 있는 열매들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도 악취에 진저리를 치게 되고, 자칫 밟은 것을 모른 채 차 안이나 실내로 들어서면 그 냄새가 그 안에도 가득 차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행나무의 가로수 부적합성을 내세우며 베어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는 지인들을 곧잘 마주치곤 한다. 그렇지만 열매 악취 하나 때문에 은행나무를 베어내야 할까? 기실 은행나무는 도시의 공해에 잘 견딘다는 특성 하나만으로도 가로수로 참으로 적합한 나무이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한여름 그렇게 뜨겁던 거리에서 그늘을 만들어주던 고마움은 쉬 잊어버리게 되고, 곧 다가올 늦가을의 정취를 높여주는 노란 은행나무 잎의 역할까지 생각하면 은행나무가 주는 혜택이 훨씬 큰데도 우리는 지금 열매가 주는 악취의 불편함에 과격한 생각을 하곤 한다.


보통사람들이 바라보는 대기업에 대한 시각도 은행나무에 대한 생각과 다르지 않지 않을까 싶다. 지금 대기업들은 많은 사람의 지탄을 받고 있다. 정경유착과 그에 따른 부패 스캔들, 중소기업들에 대한 불공정한 거래관계, 노동조합과의 불화 등이 대기업을 싫어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그렇지만 대기업들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산업들을 주도해 나가면서 수출을 통해 우리 경제성장을 이끌어왔고, 우리 경제가 위기에 처했던 중요한 순간(1990년대 말의 아시아 외환위기, 2000년대 말의 세계 금융위기 등)마다 위기를 넘게 만든 혁혁한 공로자였다. 향후에도 우리 산업발전의 주도적 역할은 이들이 담당해야 할 것이고, 우리 경제의 당면과제인 일자리 창출, 미래 기술개발, 혁신성장 등 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대기업들은 큰 몫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대기업들의 잘못들이 드러나는 시기가 아니라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대기업들의 중요한 역할이고, 앞으로도 이들이 우리 경제에서 많은 책임을 맡아야 하는 역할이라는 점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이런 대기업들의 중요한 역할들이 그들의 드러난 잘못 때문에 온통 잊히거나 가려져서는 곤란하다. 나아가 대기업들의 잘못을 비판하는 정도가 지나쳐서 이들 없이도 우리 경제가 운영될 수 있는 듯한 시각을 가지고 경제정책이 입안돼서는 더욱더 곤란하다. 열매 악취 때문에 은행나무의 훌륭한 역할을 망각하고 베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요즘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은행나무 열매의 악취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어쩌면 대기업들을 다룰 때도 이러한 지방자치단체들의 은행나무 취급법을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재빨리 이들의 잘못들을 처리해 주어서(응당한 처벌까지 포함하여), 가능한 한 대기업들이 우리 경제에서 맡아야 할 중요한 역할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들이 했던 전통적 역할에서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경제와 산업들이 활용하고 도입해야 할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과제들을 넘어서는 데에도 이들의 역할이 너무나 클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게 될 은행나무 잎들이 만들 노란 단풍의 정취가 기다려진다.

김도훈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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