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누구를 위한 ‘제로페이’인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07 17:54 수정 : 2019.10.07 17:54
소상공인들의 카드 수수료를 줄여주겠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간편결제 서비스 '제로페이'가 여전히 활성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박영선 장관은 "현금에서 신용카드로 전환이 이뤄지던 1990년대 말과 비교했을 때 (제로페이) 가입 속도가 느리지 않다"고 했고, 이낙연 국무총리도 "초기 홍보비가 들어가지만 그다음에는 (확산)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낙관론을 펼치지만 제로페이 활성화는 요원하기만 하다.

내 나름대로 맛집을 찾아다니는 편인데도 제로페이 사용이 가능하다는 안내 스티커가 붙은 음식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제로페이로 결제하는 손님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기대와 달리 소상공인과 소비자의 제로페이에 대한 호응도가 낮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10억원 이하 영세 소상공인이 부가가치세 매출세액 공제 등을 받을 경우 일반 신용카드의 실질 수수료율도 0~0.3%로 높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용법도 불편해 제로페이보다 카드 한번 긁는 게 편하다는 상인이 많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신용카드 사용을 통해 얻는 할인 혜택 등을 고려하면 제로페이에 끌릴 요인이 없다.

물론 아직 제로페이가 도입된 지 1년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켜볼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처럼 정부가 간편결제서비스를 주도해서 성공한 사례는 찾기 힘들다. 당장 우리나라에서는 삼성페이, 카카오페이, 페이코 같은 서비스가 있는데 굳이 제로페이를 쓸 이유가 없다.

제로페이는 정부가 나랏돈과 세금 혜택 같은 행정력을 앞세워 민간이 주도해야 할 결제시장에 진출했으니 심판이 선수로 뛰어든 격이다. 홍보비에만 100억원가량 들었다. 심판까지 뛰는데 실적은 미미하다 보니 서울시는 업무추진비와 복지포인트 일부를 제로페이로 사용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은행권은 정부 눈치를 봐가며 제로페이만을 위해 모바일뱅킹 애플리케이션 디자인에 변화까지 줬다.

이 정도면 누굴 위한 제로페이인지 모르겠다. 정부와 서울시는 '관치페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제로페이를 민간법인(SPC)으로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가 민간법인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원 마련에 협조해 달라며 은행에 10억원씩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내년에도 실적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제로페이는 잘못된 정책이었음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solidkjy@fnnews.com 구자윤 산업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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