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상식을 잃은, 부끄러운 나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07 17:22 수정 : 2019.10.07 17:22

부인과 자식은 검찰에 소환
본인은 검찰 개혁 진두지휘
이런 이해상충이 또 있을까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강왕 때 일이다. 적장을 사로잡은 공로를 놓고 다툼이 일었다. 왕의 아우인 공자 위가 다른 사람이 세운 공을 가로채려 했기 때문이다. 왕은 누구 말이 옳은지 태재 백주리에게 판단을 맡겼다.
백주리가 적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자세가 묘했다. 공자를 향해선 손을 위로 가리키며 "이분은 우리 주상의 아우님이시다"라고 말했다. 반면 다른 이를 향해선 손을 아래로 가리키며 "이 사람은 현윤(縣尹)이다. 누가 너를 사로잡았는지 사실대로 말하라"고 다그쳤다. 적장은 딱 감을 잡았다. 그는 "공자님이 나를 잡았소"라고 말했다. 여기서 상하기수(上下其手)란 고사성어가 나왔다. 사사로운 정에 이끌리거나 권력에 아부하느라 진실을 왜곡한다는 뜻이다.

공자 위는 억지를 부렸다. 공평무사해야 할 백주리는 맞장구를 쳤다. 요즘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세상에, 나는 진보 민주당이 대학생들과 맞서는 세상이 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이 왔다. 청년들은 조국 장관 '아웃'을 외친다. 하지만 민주당은 조국 사수대를 자처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내가 주목하는 단어는 상식이다. 부인과 아들, 딸, 동생, 조카가 검찰에 불려갔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법무장관 자리에 앉아 검찰개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머잖아 본인이 피의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비상식이 또 있을까. 이해상충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상식의 목소리가 전멸한 것은 아니다. 진보 진영 안에서도 쓴소리가 들린다. 민주당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 의원이 그런 이들이다. 참여연대 김경률 회계사(전 경제금융센터 소장)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래야 나중에 창피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국 장관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명색이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구는 게 창피한 거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조국 장관이 수십억원 뇌물을 받았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앞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조국 후보자의 자진사퇴가 바람직하다'는 성명을 냈다. 진영 논리가 아닌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제 편이라고 무조건 감싸지 않는 건강한 사회, 그게 그렇게 어렵나.

이낙연 총리는 지난주 국회에서 "요란하게 총리 역할을 수행하기보다 훗날 그 시점에 '이낙연이 무슨 일을 했구나' 국민이 알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총리에게 좀 더 요란한, 그러나 상식적인 역할을 기대한다. 헌법(87조③항)에 따라 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다시 상하기수로 돌아가면, 공자에게 공을 빼앗긴 현윤은 노발대발해서 창을 뽑아 공자를 찌르려 했다. 공자는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쳤다. '조국 공자'는 정권의 엄호 아래 검찰과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 바람에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44.4%·리얼미터 10월 첫주)로 떨어졌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으뜸으로 친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는다. 늘 겸손하게 아래로 흐른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물과 같은 사람인 줄 알았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박수를 쳤다. 아뿔싸, 내가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다. 지금 문 대통령은 물처럼 흐르지 않는다. 뭔가 억지스럽다. 촛불정권이 이래도 되나.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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