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검찰이 들여다보는데 어느 정권이 기록 제대로 남기겠나"

안태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22 17:09

수정 2019.09.22 17:09

'개별 대통령기록관'필요성 주장… 조영삼 서울기록원장
2007년 대통령기록물법 제정
'개별관리'로 전환 염두에 둬
15년동안 열람할 수 없지만
예외조항 남발로 법 취지 무색
말그대로 기록관 일뿐
기념관 개념으로 접근하면 안돼
지난 추석연휴 직전 대한민국을 뒤덮었던 조국 법무부 장관 이슈를 비집고 난데없이 대통령기록관 논란이 일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별대통령기록관 건립을 두고 비판 여론이 거세진 것.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이 본인의 개별기록관 건립 소식을 전해 듣고는 '격노했다'고 전했고, 곧 대통령기록 관리체계를 '통합관리'에서 '통합·개별관리'로 전환하려던 계획은 백지화됐다. 모두 48시간도 안돼 벌어진 일이다.

대통령기록물의 개별관리는 모든 기록전문가들의 숙원사업이었다고 말하는 조영삼 서울기록원 원장(사진)을 지난 18일 서울기록원에서 만났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봤다. 참여정부 당시 기록연구사로 청와대에 몸담았던 그는 2007년 도입된 대통령기록물법 제정에도 참여했다.


이 법은 대통령기록물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해 국정 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고자 만들어졌다. 개별대통령기록관 설치 근거조항도 법 제정 당시 포함됐다. 애초 '통합관리'로 출발했지만 '개별관리'로의 전환을 염두에 뒀던 것이다.

법에 따라 대통령이 지정기록물로 지정하면 본인을 제외하곤 15년 동안 누구도 열람할 수 없다. 최대 30년까지 가능하다.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기록으로 남겨도 정권이 바뀐 후 그 기록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법 제정의 취지다.

다만 법이 만들어진 이후 검찰이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한 사례들이 많아지면서 법 취지가 무색해졌다는것이 조 원장의 판단이다. 국회 재적의원의 3분의 2가 의결하거나 검찰이 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을 받으면 지정기록물 열람이 가능하다. 조 원장은 "수사나 재판에 필요할 경우엔 봐야 한다고 판단해 이 조항을 넣었다"면서도 "국회에는 헌법 개정에 준하는 장애물을 만들어 놓은 만큼 검찰도 제한적으로 예외조항을 적용해야 하는데 일부 남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8년 노무현 전 대통령 국가기록물 유출사건을 시작으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 의혹, 세월호 보고시간 조작, 이명박정부의 댓글 조작 그리고 최근 김학의 전 차관의 성폭력사건 무마를 위한 외압 의혹 등 검찰이 대통령기록물들을 들춰본 사례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모든 정권은 기록이 보호받지 못한다고 판단하면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조 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기록이 보호받지 못할 경우 공식적인 기록 생산시스템 체계 밖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며 "증거가 남는 전자결재가 아닌 종이문서로 의사결정하고 나중에 파쇄해버리면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는다"고 했다.

기록전문가들이 법 제정 당시부터 대통령기록물을 개별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이유다. 조 원장은 "개별기록관이어도 영장을 발부받으면 들여다볼 순 있겠지만 검찰이 느끼는 심리적 장애물이 존재하고, 기록관장도 전임 대통령이 추천한 사람이어서 기록물이 보호될 가능성이 높다"며 "기록관리 전문가 입장에서 중요 기록물을 하나라도 더 남기기 위한 제도적 틀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별대통령기록관이 '기념관'이 아닌 '기록관'이라는 점도 그가 강조하는 내용이다. 조 원장은 "개별기록관은 개인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대통령이 재임 중 남긴 기록을 별도로 관리하는 국가기관"이라면서도 "다만 학계 내부에선 공감대가 충분했지만 국민이 오해했다면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다.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