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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매장 살처분 중단하고 인도적 살처분 시행해야”

강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20 07:33

수정 2019.09.20 08:12

동물자유연대 성명서

지난 17일부터 파주와 연천에서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발병, 19일 24시 현재 5177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됐고, 1만마리 이상의 돼지들이 지금도 죽어가고 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살처분을 시행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과정에서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기 위한 인도적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동물보호법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국가에 부여하는 의무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마구잡이식 살처분이 진행되고 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살처분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동물과 사람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법에 따라 인도적 방식의 살처분을 집행해야 한다.

다수 언론이 파주와 연천에서 취재,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이번 아프리카 돼지열병 발생 현장에서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빠른 의식 소실 후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기본원칙이 무시된 채 잔인한 방식의 무분별한 살처분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8년 8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SOP)'[에 따르면 가스를 이용한 살처분 시행 시 구덩이를 파고 밀폐 상태를 유지하여 적절한 농도의 이산화탄소를 주입해야 한다.

그러나 파주와 연천 어느 곳에서도 이런 지침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맨땅 위에 어설피 세운 가림판 위로 비닐을 덮어 가스를 주입하다 보니 ‘의식소실 후 절명’이 확인되지 않은 돼지들이 산채로 생매장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돼지를 포크레인 삽날로 내리찍는 엽기적인 장면도 포착되었다. ‘가스 사용’은 눈가림일 뿐, 결국은 생매장 살처분에 불과한 잔인한 상황이다.

우리는 먼저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살처분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생매장보다는 낫다고 하나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살처분 방식도 동물에게 고통을 유발한다. 때문에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이산화탄소보다 질소 사용을 권장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지난 2017년 강창일 의원 발의로 살처분 시에 질소를 사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제출된 바 있다.

당시 강창일 의원은 이산화탄소 가스를 이용한 질식사 방법이 동물에게 극심한 고통이 수반되는 단순 질식사 방식으로서 비인도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동물이 고통을 느끼기 전에 폐사 전 무산소증으로 기절하게 돼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질소사용을 법제화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소관부서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이산화탄소가 더 저렴하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 결국 법안은 폐기되었다.

이산화탄소는 사람에게도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2017년 10월 발표한 ‘살처분 매몰처리 작업자 건강관리지침’을 통해 “살처분 시 사용되는 가스 중 이산화탄소 가스는 사람에게도 중독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살처분이 끝난 후 피복한 비닐을 제거하고 30분 이상 충분히 환기 시킨 후 다음 작업을 수행”하고, 작업자에게는 ‘방독 방진 겸용 마스크’를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사항이 파주와 연천의 살처분 현장에서 얼마나 지켜졌는지 의문이다.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정부는 2016년부터 질소사용을 위한 방법을 고민,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질소가스 거품을 이용한 인도적 장비를 개발, 보급 중이다. 98% 이상의 질소가스에 동물을 노출시켜 수십 초 이내에 의식을 잃고 고통 없이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장비로서, 작업자에게도 안전하다는 게 축산과학원 측의 설명이다. 이러한 장비가 이미 개발, 보급 중인데도 이번 아프리카 돼지열병 살처분 상황에서 왜 이산화탄소 사용을 고집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중차대한 재난급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억울하게 목숨을 잃어야 하는 동물의 고통, 노동자의 안전보다는 서둘러 땅에 묻고 상황을 정리하려는 비인도적 조급함만을 앞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대단히 우려스럽다.

이러한 허술하고 비인도적인 살처분 사태의 배후에는 정부의 부족한 생명 감수성과 함께 ‘위험의 외주화’ 정책 또한 한몫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14년부터 살처분을 외주화하여 용역업체에 맡기고 있다. 치사율이 100%에 달하는 아프리카 돼지열병 발병 상황에서조차 정부는 이의 해결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살처분 작업을 용역업체에 외주화하고 있다. 용역업체는 한 푼의 이윤이라도 더 남기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허술한 장비들로 살처분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위험의 외주화’가 어떤 끔찍한 결과를 야기하는지 우리는 지난 수년간 아프게 경험해 왔지만, 동물의 대량 살처분과정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2018년 8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아프리카돼지열병 긴급행동지침(SOP)에는 가스법(이산화탄소 등) 시행 시 ①동물의 이동이 용이하고, 장비작업이 가능한 장소에 살처분 물량을 고려하여 적당한 크기의 구덩이를 설치 ②동물 이동시 미끄러지거나 추락하지 않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구덩이 안으로 이동할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돼지 20도, 소·염소 30도)를 설치 ③동물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구덩이 상단부에 비닐을 덮고 흙을 이용하여 밀봉한 후 이산화탄소 가스를 주입 ④가스에 대한 반응이 약하거나, 의식을 회복하였거나 의식회복이 의심되는 개체는 보조 장치나 약물 등 보조 방법을 이용하여 죽음을 유도 등의 과정을 거치도록 규정돼 있다.

언론 보도에서 확인된바, 살처분 현장에서 이런 지침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사용한 파주에서도, 질소 거품을 사용한 연천에서도 제대로 밀폐조차 되지 않는 공간에서 무리하게 가스를 주입하다 보니 의식소실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동물들이 산채고 생매장되고 있는 것이다. 지침에 따라 의식회복이 의심되는 개체에 대해서 별도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중장비를 이용, 고통스럽게 죽이는 장면이 생생하게 폭로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돼지 살처분 시 가스를 사용할 경우, 컨테이너를 이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밀폐성 유지와 작업자의 트라우마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인데, 살처분이 시행된 파주에서도, 연천에서도 이런 인도적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서둘러 죽이고 서둘러 땅에 묻으려는 잔인한 조급함으로 인해 동물과 사람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의 개선을 위해 우리는 지속적으로 안전하고 인도적인 방식의 살처분 집행을 요구해왔다.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러운 방식을 사용하고, 사람의 안전도 고민해달라는 우리의 요구가 과한 것인가? 조금이라도 더 인도적인 방식으로 살처분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동물단체의 입회와 참관을 허용해 달라는 우리의 요구가 그리도 무리스러운 것인가? 무고하게 죽어가는 생명을 두고 계산기만 두드리는 방식으로 생명의 존엄성과 동물복지는 결코 지켜질 수 없다.

가리고 묻는다 하여 참혹한 현실이 바뀌진 않는다.
동물의 아픔을 이해하고, 동물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적 마지노선이며, 문명사회의 시민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의무이자 권리이다.

camila@fnnews.com 강규민 반려동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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