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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시장경제와 사회정의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17 16:39

수정 2019.09.17 16:39

[fn논단]시장경제와 사회정의
내용이 부실하거나 감추고 싶은 진실이 있을 때 상반된 언어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전두환정부의 국정지표만 해도 민주, 복지, 정의 등 좋은 단어로 포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두환정부가 그런 단어를 실제로 구현했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최근에는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계기로 문재인정부가 말하는 '평등, 공정, 정의'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를 곱씹어보는 사람이 많다. 아마도 이들 세 단어를 포괄해서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사회정의'가 될 것이다. 사회정의에는 정의라는 단어가 명시돼 있는 데다 평등과 공정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사회정의'는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라고 표현하는 것이 타당하다. 명사로서의 '사회'는 부정적으로 해석할 이유가 없고, 국가와 대비되는 단어다. 하지만 형용사인 '사회적'이란 단어는 비스마르크 시대 독일에서부터 '정의(正義)'를 비롯해 수많은 단어와 혼용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다. 1870년대에 등장한 사회적 정의는 원래 '빈곤한 사람들의 후생증진에 더 힘써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다가 점차 그 의미는 '사회'가 모든 구성원의 물질적 지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쪽으로 확장됐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의미는 개개인들이 각자가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까지 포함하게 됐다. 이 같은 의미의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나서서 그런 결과(사회정의)가 창출될 수 있도록 과정을 조정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사회'가 아니다. 사회는 생각하고 행동하고 평가하는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국가권력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가 시장경제에 깊숙이 개입해야 하고, 규제나 입법을 통해 정의롭다고 생각되는 결과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경제사상가였던 하이에크에 따르면 시장경제는 인간의 기획이나 의도와는 무관한 자생적 질서다. 그 결과 오늘날 흔히 말하는 '20대 80'의 사회와 같은 불평등이 발생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이 같은 불평등이 정의롭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정부가 개입해 분배적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사회적 정의는 분배적 정의를 의미하는 것이다. 문제는 '누가' '어떻게' 개입하느냐다. 바로 이것이 정의의 문제와 직결된다. 그런데 중앙집권적인 정부나 관료조직은 노동생산성을 높이거나 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부적합한 조직이다. 어디에 얼마를 투자하고 관리해야 하는지는 정부 관료보다 기업가나 국민 개개인이 더 잘 안다. 자생적 질서를 도외시하고 규제와 입법을 통해서만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정의라는 단어가 '사회적'이란 수식어 때문에 오염됐다고 해서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니다. '목욕한 아기와 더러워진 목욕물을 함께 내버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이 정의로운지는 잘 모르지만 무엇이 정의롭지 못한 것인지는 알 수 있다. 따라서 하이에크는 우리가 '사회적 불의'를 꾸준히 제거함으로써 점차 '사회적 정의'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위법한 게 없다고 해서 정의로운 것도 아니다. '합법적 불의'라는 것도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적 정의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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