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친조·반조, 나라가 쪼개졌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09 16:49 수정 : 2019.09.09 16:49

적과 동지만 있는 정치
文 "진정한 통합" 약속
조국 임명으로 물거품

조선시대 이조전랑(吏曹銓郞)은 품계는 낮았지만 요직으로 꼽혔다. 인사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조 때 신진 사림(士林) 김효원이 이조전랑으로 추천됐다. 그러자 구세력을 대표하는 심의겸이 태클을 걸었다.
심의겸은 김효원이 권문세가의 집에 드나들며 그 집 자제들과 어울린 것을 문제 삼았다. 공방 끝에 김효원은 이조전랑 자리를 차지했다. 이 일로 김효원과 심의겸은 원수가 됐다. 이후 사림이 두 패로 갈린다. 마침 김효원의 집이 서울 동쪽에 있어 그를 따르는 무리를 동인, 심의겸의 집이 서울 서쪽에 있어 그를 따르는 무리를 서인이라 불렀다. 나중에 동인은 남인·북인으로, 서인은 노론·소론으로 2차 분열한다.

당쟁의 근본은 권력투쟁이다. 일단 편이 갈리면 적과 동지 이분법만 남는다. 사학자 이성무는 "(당쟁은) 객관적이고 당당한 명분과 의리가 아니라 자기 당에 유리한 명분이나 의리를 견강부회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비판한다('단숨에 읽는 당쟁사 이야기').

이른바 조국 사태에서 21세기 당쟁의 흔적을 본다.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조국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그를 지키려 집권세력이 총출동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 대통령이 뽑은 검찰총장이 타깃이 됐다. 조국은 살아 있는 권력이다. 윤석열 총장은 대통령이 시킨 대로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들이댔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쿠데타, 항명, 내란음모 같은 험악한 단어가 난무한다. 지금 윤 총장은 집권층으로부터 적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다.

금태섭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주 청문회에서 조 후보자를 향해 "젊은 세대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편을 대할 때와 다른 편을 대할 때 기준이 다르다"며 이중잣대를 꼬집기도 했다. 그러자 조국 지지자들로부터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금 의원이 같은 편을 무조건 감싸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너무 서글프다.

조국 사태는 한국 정치, 나아가 한국 사회의 분열상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독일의 정치철학자인 칼 슈미트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1932년)에서 정치의 본질을 적과 동지의 구별에서 찾았다. 나치에 동조한 이의 주장이라 껄끄럽지만, 적어도 한국 정치에선 그의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소설가 이청준(1939~2008년)의 초기 작품 중에 '소문의 벽'이 있다. 6·25가 터지고 어린 주인공이 살던 마을에 경찰과 공비가 번갈아 찾아온다.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집에 들이닥쳐선 "눈이 부시도록 밝은 전짓불을 내리비추며 어머니더러 당신은 누구의 편이냐"고 물었다. 잘못 대답했다간 목숨이 날아갈 판이다. 머뭇거리는 어머니의 얼굴은 절망으로 구겨졌다. 주인공은 다 커서도 "사람의 얼굴을 가려 버린 전짓불에 대한 공포"를 잊지 못한다.

후보자 시절 조국은 기자간담회에서 "만신창이가 됐다"고 말했다. 동시에 나라도 만신창이가 됐다. 친조냐 반조냐, 두 패로 쪼개졌다. 상식과 합리가 설 자리는 없다. 문 대통령은 '동지' 조국의 편에 섰다. 허물엔 눈을 감았다. 2년4개월 전 취임사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도 했다. 조국 임명으로 취임사는 빈말이 됐다. 문 대통령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정치판에 오로지 적과 동지만 득실거리는 나라, 당쟁이 판치는 나라, 대한민국은 그런 나라로 가고 있다.

paulk@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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