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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일본 정신 구조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05 17:17

수정 2019.09.05 17:17

[윤중로]일본 정신 구조
일본의 한국에 대한 무역규제는 신군국주의 부활 프로젝트다. 일차적으로 전후 마련된 평화헌법 개헌이 목표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중단 없이 진행되고 있는 제국주의 부활의 날갯짓이다. 최근 일본의 소란스러운 외교적 제스처는 한반도 평화 분위기 확산이 결정타다. 무엇보다 일본사회의 정신적 쇠퇴와 문화적 침체가 이런 흐름을 자극한다. 침체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강한국가'로 재무장하는 것이기에. 그러나 간단치 않다.
동북아 정세를 좌우할 평화를 향한 바람에 가속도가 붙어서다. 메이지유신 이후 줄곧 일본인을 지배했던 서구 지향의 국가전략에 구멍이 뚫렸다. 버트런드 러셀은 일본은 증명되지 않은 거짓을 참이라고 믿는다고 역설했다. 천황 체제가 견고한 것도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어서다.

일본의 노쇠화는 불가피한 역사의 흐름이다. 주체는 없고 타자만 넘실거려서다. 그들의 무의식은 미국 등을 위시한 서구라는 대타자가 똬리를 튼다. 아시아를 위한 공간은 없다. 탈아가 최종 목표다. 1905년 러일전쟁 승리를 계기로 제국주의로 가속페달을 밟은 구멍난 자신감에 아직도 취해 있다. 탈아의 최종 종착지는 어디일까.

제2차 세계대전을 미국과 영국에 패한 것으로 파악하고 아시아에 대한 침략전쟁이라는 근본적 성찰을 지운 것도 그래서다. 가해자로서의 흔적을 없애는 데만 열중할 뿐 정작 필요한 자기 성찰은 요원하다. 자신들보다 강대국인 연합국의 이미지를 덧칠해 패전을 감춘다. 승리에만 집착하는 경향은 신화다. 일본인의 정신적 지주인 일본사기가 신화적 요소를 강하게 띠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신화는 현실이 아니다. 임진왜란 이후 정사 편찬사업이 일본에서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단적인 예다. 중국을 비롯해 한국, 베트남 등에서는 왕조의 멸망에 따른 정사 편찬작업이 새로운 통치자의 당연한 의무였다. 역사를 기록·평가하고 편찬하는 전통이 일본에는 없었다는 것이 희화화된 역사를 연출했다.

유교모델을 채용한 중국, 한국과 비교해 일본의 보편적 사고회로에는 유교가 없다. 되레 유교를 부정하는 경향이 강했다. 국가운영 체제로 유교를 도입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과거제를 도입하기 위한 인쇄기술 발달과 그에 따른 서적 보급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갖춘 인재 확보도 빠질 수 없다. 즉 고도의 국가체계를 형성하는 인프라가 일본에는 결여돼 있었다는 방증이다.

일본이 '탈아'를 강조하며 서구에 집착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 흠결을 지우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다. 일본 스스로 서구열강과 동등한 입장에서 자신들이 아시아를 '문명화할 주체'라는 명분을 얻을 수 있어서다. 뒤틀린 인식은 비극적 역사의 맹아다. 천황제라는 전대미문의 우상화 작업까지 좌고우면하지 않는 일본식 직선적 역사관의 폐해다. 주체 없는 사회의 단면이다. 그러나 주체 없는 사회는 대리보충물들의 집합소다. 미국과 유럽이라는 보충물은 일본 정신구조를 특징짓는다.
제국의 강화와 확장을 통한 국가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서양적 요소가 그들의 정체성이다. 요컨대 일본의 역사와 사회의 특징을 서구와의 유사성, 한국·중국과의 이질성으로 파악하는 담론의 재생산이 작금의 무역규제라는 비상식적 행위를 기동케 한 원동력이다.
일본사회의 조직원리는 내부에서의 억압을 동반한 거짓 평화와 외부에 대한 차별과 폭력성의 테제로 가동된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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