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진의 글로벌 워치]

국제기구 진출 법칙과 정부 관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29 17:51 수정 : 2019.08.29 17:51
젊은 친구들에게 희망사항을 물어보면 상당수가 국제기구 진출을 꼽는다. 국제분쟁을 관리하고 관계를 조절하는 국제기구 진출에 대한 높은 열망은 환영할 일이다. 국제기구에 대한 기여와 자국민 진출이 많을수록 영향력과 정보의 접근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미·중 패권전쟁, 한·일 안보·무역 갈등, 자국중심주의 및 포퓰리즘의 득세로 국제 가치사슬과 세계화가 느슨해지고 외교·안보 및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현실은 국제기구에 대한 수요를 필연적으로 확대할 것이다.
국제기구들이 현재 '제 역할을 하고 있나'와는 별개 문제다. 유엔, 북대서양조약기구,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인류 역사상 최대 희생을 치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알 수 있다. 어차피 국제사회에 문제가 생기면 협력과 조율을 위해 관련 국제기구가 역할을 하게 돼 있다. 다자주의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고, 심지어 세계무역기구 무용론까지 설파하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조차 유엔 기여금은 단 한 푼도 줄이지 않았다. 최대 기여국(22%)이다. 그 뒤엔 중국(12%)과 일본(8.5%)이 있다. 국제기구가 자국의 영향력 발휘에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주요국들의 힘 있는 국제기구에 대한 집착은 무섭다. 기존 규범과 규칙을 바꿔서라도 그들의 이익을 지키려고 한다. 유럽국들은 2011년 '절대 불허'라며 신흥국 후보들을 압박했던 나이제한(선출 시 만 65세 미만) 규정을 폐지해서라도 유럽 출신인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세계은행 최고경영자를 차기 IMF 총재로 선출하려고 한다.

우리도 국민들의 지지와 꾸준한 정책적 노력 덕분에 세계 11위의 유엔 기여국이 됐다. 우리의 영향력을 제고할 필요조건은 어느 정도 갖췄다. 그러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우리 국민의 유엔기구 진출이 기여도 대비 18%(419명)에 불과하다. 기여도가 비슷한 스페인의 71%와는 현격한 차이다. 더욱이 유엔개발계획의 200명 넘는 국장급 직원 중 개발 모범사례인 한국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우리 국민의 국제기구 진출은 개인의 능력·경험과 함께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이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과 경험뿐 아니라 문서 작성이 가능한 영어 실력을 갖춰야 한다. 국제학부와 국제대학원이 적극적인 아웃리치를 통해 정부 부처·국제기구와 삼자 협력프로그램을 만들고 학생들이 국제기구 인턴십, 단기프로젝트 등에 참여할 기회를 마련해 주면 국제기구 진출을 목표하는 인재들이 자신의 좌표를 더욱 세밀하고 현실적으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제기구에서는 내 나라의 역량이 내 실력인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정보와 영향력이 집중되는 고위직 진출에는 개인의 실력 못지않게 국가의 지속적 관리와 지원이 중요하다. 외교부와 기재부 등 창구 역할을 하는 부처가 정확한 정보와 선행조건도 투명하게 알려줘야 한다. 국제기구 하급직이나 인턴 채용박람회 개최로 할 일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환상을 키워 '희망고문'하는 일은 이제 그만하자. 아울러 타 부처 공무원들이 제기하는 정보 비공유에 대한 불만의 근원이 부처 중심주의와 순혈주의 때문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우리 국민의 국제기구 진출은 사실 엄청난 정책도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국민의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관련 부처와 공무원이 진정성을 가지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적임자를 넓게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물론 최우선 전제조건은 국제기구가 자국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임을 간파한 지도자의 혜안과 행동이다.

kjsong@fnnews.com 송경진 FN 글로벌이슈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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