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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잘 살기위해… 독립운동 자금 댄 동화약방 [기발한 사명 이야기]

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20 16:41

수정 2019.08.2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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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약품
함께 잘 살기위해… 독립운동 자금 댄 동화약방 [기발한 사명 이야기]
19세기 말.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사람은 급체로도 쉽게 죽었다. 1897년 궁중선전관 민병호 선생은 국내 최초 양약인 '활명수'를 만들었다. 말 그대로 '생명을 살리는 물'(살릴 活, 생명 命, 물 水)'이라는 뜻. 그의 아들 민강 선생과 함께 활명수 대중화를 위해 약방을 만들고 '동화약방'이라 이름 붙였다. 국내 최초 제약사 '동화약품'의 시작이다.

동화약품은 122년 긴 역사만큼 사명에도 깊은 뜻이 담겨있다.

유교의 경전 주역에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예리함이 쇠도 자를 수 있다(二人同心 其利斷金)'의 '동(同)'과 '시절이 화평하고 해마다 풍년이 들면 나라가 태평하고 국민이 편안해진다(時和年豊 國泰民安)'의 '화(和)'를 결합해 '동화'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일제 치하에 어려웠던 시기, 민족이 함께 화합해 잘 살아보자는 뜻을 사명에 담았다.

많은 사람들이 '동화약품' 하면 빨간색 부채 로고를 떠올린다. 부채 로고 또한 사명과 마찬가지로 합심의 의미를 담고 있다.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시전의 '종이와 대나무가 서로 합하여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紙竹相合 生氣?風)'에서 영감을 받아 부채를 동화약품의 상징으로 만들어냈다.

민족 합심을 강조해 온 동화약품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초대 사장 민강 선생은 1909년경 비밀결사대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했다.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후 동화약방을 독립운동 자금 조달의 거점으로 활용하며 '서울 연통부'를 운영했다. 민강 선생은 48세 나이로 순국했다. 1963년에 그 공훈이 인정돼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동화(同和)' 정신은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매년 아트 콜라보레이션 활명수 기념판을 선보이고 있다.
해당 기념판 판매수익금을 물부족 국가의 식수 정화, 우물 설치 등을 지원하는 활동에 사용한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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