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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18개월만에 최대 경색…난제 풀 실마리는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부터) © News1 DB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부터) © News1 DB

(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남북관계가 지난해 평창 동계올림픽 후 18개월만에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한 모양새다.

북한은 최근 남측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는 지난 16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담화를 통해 부각됐다. 북한은 당시 담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정말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 '아랫사람들이 써준 것을 졸졸 내리읽는 남조선 당국자', '세게 웃기는 사람' 등으로 표현하며 비난했다.

북한이 대남 비난의 톤을 최고조로 올릴 때 주로 남측의 대통령을 향한 막말 수준의 직접 비난을 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강도 높은 수준의 비난이라고 할 수도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북한에 대한 경제협력 메시지를 낸 직후 이 같은 담화가 나왔다는 점도 남북관계 전망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북한은 동시에 신형 발사체를 추가로 발사하며 비난과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조평통 담화에서 "북쪽에서 사냥총 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에 애써 의연함을 연출하며 북조선이 핵이 아닌 경제와 번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역설하는 모습을 보면 겁에 잔뜩 질린 것이 분명하다"라고 비난한 것을 감안하면 남측을 향한 조롱의 메시지가 담긴 군사 도발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같은 북한의 행보는 표면적으로는 한미 합동 군사연습에 대한 반발 차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안팎에서는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 후 북측이 우리 측에 큰 실망감을 느낀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북한이 당시 회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했던 우리 측을 통해 사전에 전달받은 미국 측의 입장과 실제 회담장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들은 내용이 상이했으며 이를 계기로 우리 측에 대한 믿음을 거뒀다는 '후문'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부터 우리 측을 향해 '오지랖을 부리지 말라'라며 남북미 3자 대화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또 외무성과 통일전선부 채널을 재배치해 미국과의 양자 대화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내부 정비도 마친 상태다.

여기에 지난해 대화 국면에서 중단됐던 한미 연합훈련과 연습 등이 올해 재개되자 북한은 이를 빌미로 남측을 향해 강도 높은 비난과 압박전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대북 제재 완화 문제에 있어서 우리 측이 실질적인 영향력이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미 공조가 굳건한 상황에서는 굳이 3자 간 소통이 필요 없으며 남측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거나 방치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국제기구를 통한 정부의 대북 쌀 지원도 무기한 연기되는 모양새이고 개성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소통 등 당국 간 공식 대화나 회담도 '개점휴업'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재로선 북미 대화의 재개를 통해 남북 간 실마리를 찾는 방법 외에 남북 양자 간 대화 개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성사가 어려워 보인다.

한미 군사연습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광복절을 계기로 한 대북 메시지가 효력이 없었고, 남북 간 이렇다 할 공동의 정치적 이벤트는 예정된 것이 없다.

정부가 9월 평양 정상회담의 1주년을 계기로 어떤 시도를 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북한의 현재 태도로 봤을 때는 우리 측에 요청에 호응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반면 북미 대화는 재개 동향이 비교적으로 뚜렷한 편이다.

한미 연합연습 기간에도 북한은 미국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보내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고 미국과 밀착된 대화가 진행 중임을 시사하는 행보를 보였다.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북한의 미사일 및 방사포 발사에 대해 "북미 간 합의를 위반하지 않았다"라며 '감싸주기' 전략을 구사하면서 북미 간 큰 파열음이 나지 않았다.

미국의 대북 채널 실무자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오는 20일 한국을 찾는다. 2박 3일간의 일정을 소화하기로 돼 있어 북미 간 접촉이 예상되고 있다.

9월에는 유엔 총회가 열린다. 북미 대화가 수월하게 진행된다면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를 계기로 북미 간 고위급 접촉이 있을 수도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상황에 크게 개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미국으로부터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의 압박을 받고 있고 북한으로부터는 대화 상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북미 중 누구를 상대로도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운 셈이다.

일각에서는 북미 간 협상의 진전을 통한 대북 제재 완화 국면까지 정부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도 내놓는다. 대북 제재 완화로 남북 관광이나 경제협력 사업 등이 추진될 상황이 돼야 남북 간 의미 있는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만일 연내 북미 간 협상에 진전이 없다면 남북관계는 김정은 위원장이 내년 1월 신년사를 통해 새 메시지를 낼 때까지 경색될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다가올 북미 접촉 후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보상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한다면 남북 관계도 급격한 반전을 맞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한편으로 정부가 일단 대북 식량지원과 10월 평양에서 열리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남북전의 등의 계기에 접촉을 꾀할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어 추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