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헛다리 짚은 일본의 핵심소재 수출규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13 17:21 수정 : 2019.08.13 17:21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산업강국이다. 특히 자랑할 만한 분야는 바로 IT 산업인데, 그중에서도 모든 IT 산업과 앞으로 전개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대되는 신산업들이 모두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할 핵심요소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 최강자로 우뚝 선 것으로 인정받아 왔다. 이렇게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는 한국 산업의 아킬레스건을 일본이 건드리고 말았다. 비록 부가가치로는 보잘것없는 수준이지만,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이라는 최강의 전사가 힘을 쓰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세 가지 필수소재의 한국수출을 규제하고 나선 것이다.
수출규제의 명분이야 어떻든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국 산업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수출규제는 글로벌 밸류체인으로 엮어진 세계 산업생태계에도 큰 파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되돌아보면 1970년대에 우리나라가 막 섬유, 신발 등의 경공업으로부터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려고 하던 시기에 일본이 자랑스럽게 사용하던 산업용어 중에 '원셋 이코노미'라는 말이 있었다. 그 뜻은 일본이 경쟁력을 가진 자동차, 전자, 기계 등의 주요 산업에서 일본은 최종제품은 물론 소재·부품·장비 등 산업의 전주기에 걸친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국 내에서 이들을 '원셋'으로 영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명이었다. 그런 일본의 '원셋 이코노미'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많은 중화학공업들에서 '조립·가공' 분야의 경쟁력을 무기로 무섭게 추격하기 시작한 한국, 대만 등의 신흥공업국들이 등장한 때였다. 이에 대응해 일본 산업계는 어쩔 수 없으면 조립·가공 공정을 이들 신흥공업국에 물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임금이 싼 동남아국가들에 미리 이 공정을 이전해 경쟁력을 지키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최종제품에서의 경쟁력 저하를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핵심 소재·부품·장비들의 경쟁력은 일본 산업이 쥐고 있었고, 신흥공업국들의 일본에 대한 이 분야 의존도는 절대적인 수준이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가 걱정하던 만성적인 대일적자를 넘어선 계기가 바로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부품·소재·기계류 국산화 노력이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대일 무역적자를 걱정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서서 이제는 대부분의 중화학공업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최종제품에 못지않게 많은 소재·부품·기계류 분야에서도 높은 국제경쟁력을 누리는 산업국가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런 우리나라 산업계가 최종제품의 해외이전을 시작으로 많은 소재·부품·기계류 분야도 최종제품을 따라 대규모로 해외이전에 나선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어쩌면 일본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해외이전 움직임은 모두 글로벌 밸류체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분석돼왔기에 철저하게 경제적 논리를 따른 것으로 간주돼왔다. 그러면서도 종종 핵심 소재·부품·장비들은 일본에 아직도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온 것도 사실이지만, 워낙 부가가치가 큰 조립·가공부분과 범용 소재·부품·장비부분에서 경쟁력을 보여온 우리 산업에는 오히려 이 분야에서의 중국의 추격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우리 산업의 무신경을 건드려준 것이 일본의 수출규제가 아닐까 싶다. 앞만 보고 달려가던 우리 산업계가 산업생태계의 질적 심화 필요성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지난 8월 5일 내놓은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에서 의도한 성과를 조금이라도 올린다면 일본은 제대로 헛다리 짚은 셈이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김도훈 서강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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