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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美가 내민 동맹청구서 적정선 조율하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11 17:30

수정 2019.08.11 17:30

한·미동맹 근간은 지키되 과도한 요구엔 선 그어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9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거론한 모양이다. 취임 후 처음으로 방한한 에스퍼 장관이 '공동의 희생'을 강조하면서다. 그는 정경두 국방장관을 만나 호르무즈해협의 '항행의 자유'를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을 기대한다며 사실상 파병을 요청했다. 그간 제기된 한·미 동맹과 관련한 미국 측 청구서가 한꺼번에 밀려든 인상이다.

문재인정부로서는 선택의 기로에 섰을 법하다. 재정여건이나 대이란 관계 등 나라 안팎의 상황을 감안하면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수도, 일축할 수도 없는 처지라서다.
그렇다면 국익 최우선의 관점에서 신중하고도 원칙에 충실한 해법을 찾을 때다. 한·미 동맹의 근간을 지키면서도 과도한 요구에는 선을 그어야 한다는 얘기다.

호르무즈해협 파병 요청을 받은 정 국방장관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답한 대목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국내 수입 원유량의 70%가량이 통과하는 해상로의 안전 확보라는 명분 못잖게 이란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어서다. 그렇다면 아덴만의 청해부대를 당장 투입하기보다 미·이란 대치 추이를 좀 더 지켜보는 게 나을 게다. 일본처럼 페르시아만 외곽에서 군사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분담금 대폭 증액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긴 어렵다. 그는 올 초 주한미군 주둔비가 50억달러(약 6조600억원)에 달한다면서 올해(1조389억원)보다 6배 인상을 추진할 것이란 추측을 자아냈다. 하지만 미국 조야도 이를 불합리한 압박이라고 본다. 오죽하면 애덤 스미스 하원 군사위원장조차 "폭력단의 갈취행위처럼 국가안보를 운영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겠나.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 10일 "터무니없이 돈이 많이 든다"며 한·미 연합군사훈련마저 부정적으로 보면서 분담금을 압박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은 일이다.

지금 북한은 하루가 멀다 하고 미사일을 쏴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들은 우리 방공식별구역과 영공을 넘나들고 있다. 북·중·러가 한·미 동맹의 빈틈을 파고드는 꼴이다.
정부가 대북제재 완화에만 매달리느라 동맹도 거래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트럼프 정부의 속성을 읽지 못한 결과이다. 한·미 동맹에 더 큰 금이 가선 곤란하다.
우리 국력이 커진 만큼 산출기준과 지급방식에 대한 합리적 절충을 전제로 분담금의 일정부분 증액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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