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 톡]

내셔널리즘과 저널리즘, 그리고 연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09 17:45 수정 : 2019.08.09 19:48

"지금 뉴스들을 보고 있자면, (한·일) 양국 정치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있다. 정치가들의 감정적 대응을 언론이 그대로 보도만 하고 있다."

듣고 있자니 낯이 뜨거웠다. 일본의 독립언론인 와세다 크로니클의 와타나베 마토코 편집장이 오래간만에 재회한 한국 친구에게 던진 직격탄이었다.
이 친구를 처음 만난 건 2014년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탐사보도기자연례협회(IRE)에서였다. 당시 그는 아사히신문 특별취재팀 소속 기자였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직후 후쿠시마원전 관련 연속기사로 일본신문협회로부터 2년 연속 기자상을 받은 팀의 일원이었기에 겉보기에도 자부심이 넘쳤던 걸로 기억한다. 후쿠시마원전 제염작업이 얼마나 부실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후쿠시마원전 최후의 결사대와 관련된 보도들이 그가 취재한 기사들이었다. 그러다 간간이 듣기로는 1년 가까이 취재한 제약회사와 언론의 결탁을 파헤치는 기사가 윗선의 개입으로 보도되지 못하자 일본에서도 진보적이라는 아사히신문을 박차고 나와 '노(No) 광고'를 외치며 독립언론을 차렸다는 것 정도였다.

지난주 도쿄에서 다시 만난 그는 한·일 관계를 둘러싼 양국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화두로 올렸다. "이대로 가면 정치가들이 이끄는 대로 가게 된다." 우려였고, 경고였다. 열정적인 그는 "일본 정부가 취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실제 상관관계가 있는지 '증거'를 찾아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모든 관료들은 정책결정을 할 때 '기록'을 남기기 때문에, 어딘가에 그 기록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특파원으로서, 일본 내각의 은밀한 곳에 있을 그 문건을 어떻게….'다소 난감한 표정이 새어나오자 "그러니까 한·일 언론인들이 함께 협력해서 취재 네트워크를 가동해야 한다"고 했다.

재회 기념으로 던진 숙제치고는 꽤나 무거웠다. '내셔널리즘과 저널리즘' '국경을 넘어선 연대'라…. 내셔널리즘의 선동 앞에 저널리즘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국가, 민족 간 갈등이 치닫고 있을 때 언론은 소위 국익이라고 부르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지금의 한·일 양국 언론들이 마음 한켠에 짊어진 숙제가 아닐까 싶다.

국내에선 서울 중구청이 일본인 관광객 밀집지역에 일본 보이콧을 알리는 '노 재팬' 깃발을 설치했다가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고 철거한 일이 있었다. 같은 시기, 일본에선 국제예술전시회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에 항의하는 예술인·시민단체들의 비판 성명이 잇따랐다.

일본 소비자연맹은 이번 사건을 두고 "시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우리들의 '자유롭게 살 권리'를 매장하는 것"이라며 "시민, 소비자에 대한 중대한 권리 침해"라고 반발했다. 위안부 문제라는 과거사 문제를 직시했다기보다는 일본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침해'로 접근했다는 한계점도 있으나, 부당한 국가권력에 대항한 시민사회의 우아한 저항이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일본 학자와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 75명은 '한국은 적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올리고, 오는 15일까지 일본 정부의 규제 철회에 관한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일본 정부가 강하게 밀고나갈 때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움직임들이다. 한·일 시민들 간 연대집회도 작게나마 열리고 있다. 아직 일본 주류사회에 반향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나 관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저널리즘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비록 장외투쟁이나, 국가사회의 건강성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들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다시 묻고 싶다. 한국과 일본의 언론은 지금 어디에 위치하는가. 건강성을 잃고, 국가 대항전의 전사를 자임하고 있는 건 아닌지.

ehcho@fnnews.com 조은효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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