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염주영 칼럼]재팬리스크와 아베백신

염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05 17:08

수정 2019.08.0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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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제국주의 시대가 오는데 국가·기업 생존전략 안 보여
수입하면 된다는 생각 버려야
[염주영 칼럼]재팬리스크와 아베백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역전쟁을 언제까지 할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초 관세폭탄을 무기로 내세워 무역전쟁을 선포했다. 주적은 중국이었지만 한국도 사정권에 두었다. 한국은 재빨리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해서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에 맞서는 쪽을 선택했다. 이후 두 나라는 1년반 가까이 무역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주에도 중국을 향해 무차별 관세폭탄을 발사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런데 최근 세계무역기구(WTO)가 흥미로운 통계를 내놓았다. 세계 10대 수출대국의 올해 수출실적(1~4월)을 집계해보니 미국과 중국은 되레 수출이 늘었다. 반면 나머지 8개국은 모두 줄었다. 그중에도 한국이 감소율이 가장 높았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데 교전당사국은 별 피해가 없고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6.9%)가 발생했다. 독일(-6.4%)·일본(-5.6%) 등 전통적 무역강국들도 피해가 컸다. 이런 결과가 지속되는 한 트럼프와 시진핑은 무역전쟁을 서둘러 끝내야 할 이유가 없을 듯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등장한 이후 국제무역 환경은 무법지대로 변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부터 일체의 기존 질서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황야의 무법자처럼 행동했다. 지난 70여년 동안 세계가 쌓아온 자유무역 법규와 제도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사실은 황야의 무법자가 한 사람 더 있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악명이 높기로는 트럼프에 뒤지지 않았다. 그는 2010년에 희토류 수출금지를 통해 일본에 KO 펀치를 날린 전력이 있다.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에서 일본을 굴복시키기 위해 무역을 무기로 이용했다. 몇 년 뒤에는 한국에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가했다. 무역과 무관한 안보문제를 내세워 무차별 무역보복을 자행했다.

지난달 자유무역 체제를 무너뜨리는 황야의 무법자 대열에 또 한 사람이 가세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다. 그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반도체산업을 정조준했다. 반도체 핵심 소재의 공급을 끊은 데 이어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도 발동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이었다. 역사갈등에서 한국을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역을 무기화했다. 이것은 황야의 무법자들의 전형적 행동패턴이다.

자유무역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황야의 무법자들이 강대국의 힘을 배경으로 무역보복의 칼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 과거에도 무역보복이 있었지만 자국 산업을 지키기 위한 방어용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무역보복은 상대국 산업을 무너뜨리기 위한 공격용으로 바뀌는 양상이다.

무역제국주의 시대가 오고 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피비린내 나는 황야에 한국의 주요 산업과 기업들이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반도체를 포함한 주력 산업들이 핵심 소재·부품·장비 대부분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특정품목의 공급을 어느 한 나라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 나라가 일본이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이런 구조를 오랫동안 방치해왔다. 그 결과 재팬리스크가 너무 커졌다.

기업들은 '수입해다 쓰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평화 시에도 필수품목은 국내에서 조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물며 무역제국주의 시대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우리 기업과 산업의 건강을 지키는 백신으로 삼아야 한다.
나를 대신해 나를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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