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서초포럼

[여의나루]일본의 잃어버릴 20년과 미국의 실수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8.01 17:18

수정 2019.08.01 17:18

[여의나루]일본의 잃어버릴 20년과 미국의 실수
일본의 수출규제가 시작된 지 이제 한 달이 지났다. 지난달 참의원선거가 끝나면 일본이 일부 수출규제를 완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일본은 8월 2일 각료회의에서 한국을 수출통제 품목에 대한 백색국가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것을 거의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일본 입장에서 무모한 수출규제는 자국이 경쟁력 가진 산업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고, 새로이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수렁의 첫 단계에 진입할 수도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분명히 한국 반도체 기업에 단기적 타격을 주더라도 한국에 수출을 하지 못하는 일본기업이 받게 되는 타격이 더 심각할 수 있다. 더욱이 한국 반도체 기업은 그나마 반도체 공급량 감소에 따른 수출가격 인상이라는 보상을 기대할 수 있지만,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 반도체 기업이라는 고객을 잃어버리는 일본기업은 오히려 가격도 하락하고 소재도 수출하지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 반도체 가격이 상승하고 공급량은 감소한다면 그 반도체를 의존하는 일본기업들이 타격을 받게 된다.
그런 영향이 오랜 기간 지속된다면 일본의 핵심산업들이 몰락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해당 산업들에서 일본이 주춤거리는 사이에 한국·중국·대만 기업들이 약진한다면 일본 핵심산업의 몰락은 생각보다 빨라질 수 있다. 이에 더해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리스트에서 제외한다면 한국도 제조업에서 타격을 입을 수 있겠지만 일본이야말로 잃어버린 20년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현재 이런 상황을 방치해 왔던 미국은 어떠한가. 현재 미국과 힘겨운 무역분쟁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는 중국 기술 굴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산업 육성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미·중 통상분쟁으로 인해 중국에서 이탈하려던 기업들을 다시 끌어안을 수 있다. 80일 만에 재개된 미·중 통상협상이 중국의 버티기로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난 점은 이미 미국이 일본의 수출규제의 피해자가 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그나마 팔짱을 끼고 있던 미국이 일본의 수출규제가 만들어 놓은 안보와 경제의 빈틈을 인지하고 한국과 일본을 중재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점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한국 입장에서 미국의 개입은 공짜가 아니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 미국산 무기 추가 구매를 요구했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중국을 배제하는 인도·태평양전략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동조할 것을 요구했을 수 있다. 미국은 이런 와중에도 얄밉게도 한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아야 하는 국가로 지목하기도 했다.

어쨌든 한국 입장에서 지금은 상황을 조기 해결하는 일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분명히 어느 시점에서 현재 상황을 복기해 봐야 한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밝혔듯이 일본이 이렇게 터무니없는 무역보복을 할 것이라는 점을 최소한 예측을 했다면 이를 사전에 차단할 방법이 없었을까. 아니면 일본이 무역보복이라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없었을까.

애석하게도 일본이 보복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면 최소한 미국과 일본에 사전적으로 경고함으로써 일본이 수출규제를 하지 못하게 막을 수도 있었다. 일본이 포함된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 가입협상에 조기에 참여함으로써 일본의 무역보복 기회 자체를 무력화했을 수도 있다.
모쪼록 과거 중국의 사드보복 이후에도 얻지 못한 교훈을 이번에는 반드시 얻기를 희망한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