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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 사건'에서 드러난 경찰의 이중 잣대…제도개선 선행돼야

뉴스1

입력 2019.07.31 06:00

수정 2019.07.31 06:00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후 은닉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36)이 지난 6월 1일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경찰에 체포될 당시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됐다. (경찰이 촬영한 영상 캡처본) 2018.7.28/뉴스1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 후 은닉한 혐의를 받는 고유정(36)이 지난 6월 1일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경찰에 체포될 당시 모습이 담긴 영상이 공개됐다. (경찰이 촬영한 영상 캡처본) 2018.7.28/뉴스1


'전 남편 살해 사건' 피의자 고유정이 12일 오전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제주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2019.6.12/뉴스1 © News1 이석형 기자
'전 남편 살해 사건' 피의자 고유정이 12일 오전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제주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2019.6.12/뉴스1 © News1 이석형 기자

(제주=뉴스1) 홍수영 기자 = '전 남편 살인사건' 피고인 고유정(36)이 체포될 당시 영상이 공개된 가운데 경찰청이 진상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공보규칙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과 함께 피의사실 공표, 신상정보 공개 등 관련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1일 고유정을 긴급체포한 후 전 남편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사실 공표' 등을 이유로 이례적으로 관련 정보 공개를 강력히 통제해왔다.

해당 사건을 맡은 제주동부경찰서는 사안이 중대하지만 범행 수법이 잔혹한 만큼 파장이 클 수 있고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제주동부경찰서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에는 꾸준히 고유정을 둘러싼 다양한 수사정보가 노출돼 경찰청을 비롯한 외부기관에서 새어나왔다는 추측을 낳았다.

고유정 체포영상 공개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호의적이다. 되레 영상을 유출한 경찰 징계에 반대하고 응원하는 목소리가 적지않다.

공교롭게도 논란의 중심에 선 해당 경찰은 고유정 사건 부실수사 의혹으로 세간에 비판을 받아왔던 박기남 전 제주동부경찰서장(현 제주지방청 정보화장비담당관)이다.

사건 초기 정보 제공을 차단해 언론과 마찰을 빚었던 박기남 전 서장이 이번 체포유출 영상의 장본인이라는 점도 오락가락한 공보규칙 적용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번 영상 공개에 '공익과 알권리' 이외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이유기도 하다.

경찰청훈령 제917호인 '경찰수사사건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 제4조 '수사사건등의 공개금지'를 보면 사건관계자의 명예, 사생활 등 인권을 보호하고 수사내용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수사사건 등은 그 내용을 공표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공개해서는 안된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공보규칙이 모든 걸 규정하는 게 아니다보니 재량을 발휘해 적용하게 된다"며 "예전에는 피의자 얼굴을 모두 공개했다가 요즘은 인권을 이유로 얼굴을 가리듯이 시대와 사항에 따라, 국민 여론 분위기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공보규칙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져 일관된 원칙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일선 현장에서의 정보 공개에 혼선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테면 수사사건을 알릴 경우에는 헌법상 무죄추정 원칙에 의거해야 하고 언론매체에 균등한 보도의 기회가 제공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건관계자의 신상 등의 공개는 A씨, B씨와 같이 익명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일선 현장에서는 이 같은 규칙을 다 지키려면 공익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보도까지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규칙에 따른 신상공개 방법 역시 고유정 사건을 통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신상공개 대상이라도 얼굴을 공개하되 경찰은 얼굴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해서는 안된다.

이로 인해 고유정의 경우 이송 과정에서 얼굴을 적극적으로 가렸지만 경찰이 이를 제지하지 않아 실질적으로 신상공개가 아니라는 비판이 일었다.

또 경찰은 사전에 촬영된 얼굴사진 등도 공개할 수 없도록 해 동명이인들의 명예가 실추되는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언론매체의 균등한 보도의 기회는 이번 고유정 체포영상 공개와 같은 일부 언론의 단독보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논란의 소지가 많다.

자칫 경찰이 공익성을 위한 언론 취재 및 보도까지 통제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고유정 사건의 경우도 경찰청은 앞서 유출된 수사 정보에 대해 묵인해오다가 체포 영상 유출에 대해서는 논란이 확산되자 뒤늦게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규칙 위반 소지의 해석이 불분명한 잣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오윤성 교수는 "고유정 체포영상 공개 논란을 이유로 지금의 공보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경찰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며 "공익과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언론 보도까지 봉쇄하는 계기까지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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