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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교수님이 달라졌어요"…연구실 문화 변해야 '두뇌유출' 막는다

뉴스1

입력 2019.07.17 07:02

수정 2019.07.17 10:33

김박사넷 누리집 갈무리© 뉴스1
김박사넷 누리집 갈무리© 뉴스1


[편집자주]'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16일부터 시행됐다. 특정인이 지위나 관계 우위를 이용해 다른 이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막기 위한 법이다. 이같은 근로기준법 개정전부터 회사문화는 많이 변했다. 그러나 여전히 '괴롭힘 무풍지대'(無風地帶)는 존재한다. 대학 연구실이다. 무소불위 권력을 지닌 '절대 갑'인 교수들이 있는 곳이다.
학생들은 '을'이다. 연구실 문화는 언제쯤 변할 수 있을까. 정부는 연간 20조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개발(R&D) 개혁을 위해 온갖 해외 제도를 도입했지만 정작 '연구문화' 조성에는 뒷짐 지고 있다. '30대 민간인'이 나섰다. 유일혁 김박사넷 대표는 연구문화를 바꿔보기 위해 지난해 1월 교수평가사이트 '김박사넷'의 문을 열었다. 벌써 운영 1년 6개월째. 김 대표를 만나 국내 연구실 문화의 실정, 앞으로의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선배 여기 연구실 어때요? 가도 괜찮을까요?"
"김박사넷 안 봤어? 평가 보고 입학지원 결정해."

김박사넷 문을 연 지 1년 반이 지났다. 유일혁 김박사넷 대표는 교수들에 대한 간단한 정보공개만으로도 일부 연구실의 분위기가 확실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유 대표는 "이 같은 자료들은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한 학생들이나 대학원에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정보를 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이트인 만큼 가입자(회원) 수 비율은 대학원 입학예정자는 45%, 대학원 재학생은 40%, 교수는 5% 수준"이라면서 "대학원을 입학하려는 학생들은 모두 암묵적으로 김박사넷을 접속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눈여겨볼 부분은 5% 수준으로 미비하지만 교수들도 김박사넷에 접속해 정보를 확인한다는 점이다. 교수들이 자신들의 평가를 확인하고 자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 또한 연구실 문화 내 변화가 일어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것.

유 대표는 "학생들로부터 셀 수 없을 정도의 감사 메일을 받았다"면서 "'우리 지도교수님이 김박사넷을 의식하고 변하려고 해요', '개선할 부분을 스스로 찾더라고요', '항상 화내던 교수가 김박사넷을 알고 화도 덜 내려고 해요' 등의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사람이 '갑질 교수'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지만 연구실 문화가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시그널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평생 책만 판 교수들은 상대적으로 평가에 익숙하지 않다. 혼자서 매진해야 하는 학문의 특성상 연구성과 이외는 평가받을 일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교수직이라는 '권력'이 생긴 이후로는 더하다. 상대적으로 학문적 성취가 떨어지는 '학생들'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는 구조적으로 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교수들에게 김박사넷이 '귀'를 열어준 셈이다.

유 대표는 국가적 차원에서 연구실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 다른 이유도 꼽았다. 바로 '두뇌유출'(brain drain) 문제다. 유 대표는 "한국인이 국내 대학원을 진학하는 숫자가 매년 줄고 외국으로 가는 수가 늘고 있다"면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연구실 문화 때문이며, 국내 연구실 문화의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연구실 문화는 '을'인 학생들을 보호해 주는 제도를 택하고 있다. 유 대표는 "미국은 지도교수를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선택권이 학생들에게 있고 교수와 학생들 간의 문제가 생겼을 때 학교는 언제든 학생 편에 선다"면서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부처에 걸쳐 이뤄져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개선되긴 크게 어렵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경우 학생을 정말 '학생'으로만 본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대학원생들과는 달리 인건비를 받지도 않고, 의무적으로 출근을 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박사과정도 약 3년 만에 졸업이 가능하다. 학생과 교수 간 갈등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 이유다.

유 대표는 "일본과 같이 학생 졸업이 빨라지면 박사 능력 어떻게 보장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교수들이 있는데 만약 '물박사'(실력이 없음에도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에 대한 비판 용어)는 어차피 졸업 후 시장에서 다 걸러진다"면서 "이건 교수가 크게 신경 쓸 게 아니고 졸업 기간 내 졸업을 시켜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김박사넷의 활성화 외에도 제도적 차원으로 연구실 문화가 변할 수 있다고도 보고 있다. 그 제도 변화의 중심에는 김박사넷 설립의 근본적인 취지와도 맞닿아 있는 '정보공개'가 있다.

유 대표는 "지금 제공하고 있는 교수 논문 수, 피인용 횟수, 석사·박사 졸업생 수 등 외에도 교수들이 어떠한 과제를 하고 있고, 몇 개의 과제를 어느정도 비중을 두고 진행하고 있는지도 공개될 필요가 있다"면서 "많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교수들이 자신들 맘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대표는 연구실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를 세울 때는 교수가 아닌 학생 중심으로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했다. 유 대표는 "제도 하나를 세우더라도 무조건 학생 위주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학생 위주로 제도를 세워도 결국 무게중심이 교수에게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둘 사이의 중심으로 제도가 정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박사넷은 앞으로 교수 정보와 관련된 부분을 글로벌 영역으로 확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원 연구실에 대한 정보를 해외 대학원생들에게 공유하고 해외 대학원 연구실에 대한 정보를 국내 대학원생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는 것. 또 CV(Curriculum Vitae) 기능을 추가해 대학원생들이 대학원 입학부터 대학원에서 쌓은 실적까지 모두 정리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유 대표는 "연구실과 관련한 교수, 학생들에 대한 투명한 정보공개가 결국 국가 연구개발(R&D)을 진행하는 연구실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이는 결국 국가적 차원의 인력 양성은 물론 R&D 기술의 효율적인 활용과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끝-1편("연구실서 학생은 '노예' 아이봐주고 상가지키고"…'절대갑' 교수님 나빠요)으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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