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재무학회칼럼]

이해관계 상충에 대한 감수성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16 17:35 수정 : 2019.07.16 17:35
예부터 우리 민족은 상부상조의 미덕을 강조해 왔다. 이웃이나 지인이 어려울 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특히 인간관계가 점차 소원해지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전통이 희미해져서 그런지 누군가 주변을 돌보는 행위는 대개 덕담으로 칭송받고는 한다. 물론 본인 개인 소유의 재산을 재원으로 한 이타적 행위에는 박수를 쳐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지인에게 도움을 준 재원의 출처가 상장기업의 이윤이거나 정부 예산이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은 그 지인 말고도 많이 있기 때문에 주주가 주인인 기업, 국민이 주인인 정부의 재원으로 특정인을 도와주는 행위는 전형적인 이해관계 상충(conflict of interest)에 해당될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그간의 비약적 발전에 비해 이해관계 상충에 대한 인식이 아직 많이 미흡한 것 같다. 이해상충 상황에서 일방에 손해를 끼치면서 자신(또는 지인)의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절차적 합리성의 원칙은 근대사회의 가장 기본적 근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야를 막론하고 동기의 순수성을 절차적 정당성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로 인식하는 경향이 우리 정치권에도 팽배해 있는 듯하다. 급기야 현 정부 초창기에 헌법재판관 후보로 추천됐던 인사가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내부자거래 혐의로 정식 기소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모 의약품 인허가 과정에 참여했던 의료계 인사의 친인척이 해당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사실이 드러났다. 작년에 적발된 국내 보험사기 규모가 총 80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보험사기는 단순한 이해관계 상충에 그치기 않고 보험회사, 더 궁극적으로는 보험 가입자에게 명백한 피해를 주는 범죄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적발된 이들의 죄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 심각한 것은 상장기업의 지배주주들이 상장 이후에는 개인회사를 세워 상장기업 주주에게 귀속돼야 할 이윤을 다양한 방식으로 빼돌리는 것이다. 상장기업의 20% 지분을 가진 지배주주가 본인 개인이 100% 소유한 회사를 설립, 해당 상장기업에 대한 내부거래를 통해 연간 100억원의 매출을 일으켰다고 하자. 이 100억원의 매출은 원칙적으로 해당 상장기업에 귀속돼야 할 금액이고, 당해 지배주주는 100억원이 아닌 상장기업 지분율 20%에 해당하는 20억원에 대해서만 청구권을 가지는 것이 타당하다. 이런 주주가치 훼손행위는 우리 상장기업에 너무도 팽배해 이런 관행에서 자유로운 기업이 오히려 예외일 정도다. 경영교육 현장에서 해외 MBA 학생들에게 한국의 기업 현실을 설명하면서 어떻게 아무런 민형사상 제재 없이 위와 같은 거래가 지속되고 있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당혹스럽다. 최근 일부 자산운용사를 중심으로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는데,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다행스럽다.

과거 헨리 포드는 포드자동차의 성과를 미국 국민에게 환원하기 위해 자동차 판매가격을 인하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의사결정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했으며, 미국 법원은 결국 주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자선활동으로 유명한 빌게이츠재단은 100% 개인재산 출연으로 조성됐다. 만약 빌 게이츠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이윤을 자선단체 재원으로 출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제 우리 사회도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행위가 더 이상 덕담으로 미화되지 않도록 이해상충에 대한 감수성이 더 민감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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