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현장르포]"청년들 왔다는데 협업은 무슨… 임대료만 올랐어" 뿔난 상인들

강현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14 17:38

수정 2019.07.14 17:38

세운상가 '다시-세운 프로젝트'로 활기 찾았지만…
왜 협업 안되나
청년층 3D프린터·VR 등 다뤄..근무 환경·제조 인식 서로 달라
기존상인의 불만
리모델링으로 방문객 늘었지만 카페·식당만 북적… 매출 그대로
세운상가 3층의 데크길의 모습. 젊은 기술자들이 입주해있는 '메이커스 큐브'(왼쪽)와 기존 상인들의 상점이 마주보고 있다. 세운상가의 터줏대감인 기존 상인들은 젊은 기술자들과 협업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윤은별 인턴기자
세운상가 3층의 데크길의 모습. 젊은 기술자들이 입주해있는 '메이커스 큐브'(왼쪽)와 기존 상인들의 상점이 마주보고 있다. 세운상가의 터줏대감인 기존 상인들은 젊은 기술자들과 협업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윤은별 인턴기자
"예전 젊은이들은 부품 하나라도 더 사서 망가뜨려 보고 조립해보고, 이제 그런 열정은 보이지도 않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들한테 배우려고 안 해, 그게 안타깝지."

김용자씨(50)는 세운상가의 청년 창업가를 이렇게 묘사했다. 김씨는 38년째 이곳에서 박킹 가게를 운영 중이다.
지난 1일 방문한 김씨의 매장 앞에는 주인 잃은 고무박킹과 빼꾸손잡이, 접착식 고부발 등이 썰렁하게 나열돼 있었다. 그와 대화를 나눈 30분간 매장을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김씨는 "청년 창업자들이 들어왔다고는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지난 1일 '재생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세운상가를 찾았다.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청년 창업가들이 상가에 입주해 활기를 불어넣고 있지만 기존 상인과의 협업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세운상가는 1968년 지어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 TG삼보컴퓨터, 한글과 컴퓨터 등 많은 전자 기업들이 세운상가에서 첫 걸음을 뗐다. 하지만 강남과 용산이 개발돼 상권이 죽었고, 결국 서울시는 '상가 전체철거' 결정을 내렸다. 그러다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하며 철거가 아닌 '재생'의 길을 걷게 됐다. 세운상가에 신기술을 익힌 청년 기술자들을 불러들여 기존 장인들과 협업을 이끌어내는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세대 간 창업·제조에 대한 인식차

양측의 협업이 어려운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세대 간 창업·제조에 대한 인식 차다. 세운상가에서 전자 부품 업체를 37년째 운영 중인 권모씨(80)는 "예전엔 여기 상인들이 최고 전문가였어. 젊은 놈이 찾아와서 창업한다 하면 내가 나서서 부품 알려주고 좋은 물건 추천해주고 그렇게 장사했지"라며 "이제 내가 뭘 추천해줘도 '네가 뭘 알아' 하는 눈빛으로 쳐다만 본다"고 토로했다.

세운상가 청년 창업자들이 사용하는 공간인 '팹랩서울'을 방문했다. 6명의 직원 모두 노트북 앞에 앉아서 3D 프린터 가동을 위한 코드를 입력하고 있었다. 사무실에 있는 8개의 3D프린터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4차 산업혁명에 필수적인 3D프린터, VR, 드론, 로봇 등은 과거 제조업과 다른 기술을 요구한다. 근무 환경과 제조에 대한 인식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가 기존 상인과 청년 창업자 간 괴리를 한층 넓힌 것으로 보인다.

■대비되는 지원에 뿔난 기존 상인

서울시가 기존 상인들을 홀대한다는 인식도 협업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꼽힌다. 기존 상인들은 세운상가 재개발로 임대료 인상을 겪은 데에 비해 청년들은 상가 사무실을 무료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시는 청년 창업자에 창업 인큐베이팅, 창업 지원금 등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세운상가 내 청년 창업자들이 사용할 공간도 마련해줬다. '세운베이스먼트(서울시립대)', '팹랩서울', 'SE:CLOUD(사단법인 씨즈)', '소셜디자인 기술혁신랩(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총 4곳이 있다. 대부분 무상임대거나 10~20만원의 임대료만 낸다.

반면 기존 상인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우려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다시-세운 프로젝트' 이전 10만원가량이었던 한 상가의 임대료는 30~40만원까지 올랐다.

세운상가에서 37년째 전자 부품 업체를 운영 중인 권모씨(80)는 "재개발 끝나고 월세가 10만원 정도 올랐다. 근데 허구한 날 보이지도 않는 청년들은 서울시 지원받아서 사무실만 공짜로 쓰는 거 아니냐"면서 "피해 본 기존 상인들 생각은 안 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늘어난 방문객은 식당, 카페로만

'다시-세운 프로젝트'로 유입된 여행객들도 상인들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진 못했다. 세운상가 3층 공중보행길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SNS를 통해 유명해진 공중보행길의 식당, 카페는 북새통이었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며 기온이 30도를 넘겼지만 3층 한 카페 앞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그러나 공중보행길 유동인구의 증가는 기존 상인들의 매출 증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세운상가 3층에서 공구 상점을 운영하는 김모씨(68)는 "젊은 사람들이 여기 와서 공구를 사진 않는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상인도 "(카페가) 평소엔 100번 까지도 대기표를 받는다"며 "리모델링 이후 늘어난 방문객들이 전자상가에 들어와 제품을 사는 일은 적다"고 설명했다.
세운상가담당 해설사 조모씨는 "유명 카페 때문에 보행자가 2배로 늘었지만 보행자의 수가 상인들의 매출에 영향을 주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hyeonsu@fnnews.com 강현수 김대현 박광환 윤은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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