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쓸 카드도 마땅찮은데…중앙은행에 '감놔라 배놔라'

뉴스1

입력 2019.07.13 11:30

수정 2019.07.13 18:28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중앙은행 독립성의 전성기는 이제 지나갔다"

세계 최대 채권 운용사 핌코의 요하임 펠스 고문의 우려 섞인 발언이다. 전 세계를 장악한 '스트롱맨' 지도자들이 자신의 입맛대로 정책을 펴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앙은행 수장을 해임하는 등 막무가내 행보를 보이면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세계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자 각국 지도자들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금리인하, 채권 매입 등 경기 부양책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금리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신념까지 가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간) "시장에 자신감을 불어넣지 못했다"는 이유로 임기를 1년4개월여 가량이나 남은 무라트 체틴카야 중앙은행 총재를 갈아치웠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금리를 내리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에도 지난해 말 금리인상을 강행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 해임을 추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12월 인도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수개월간 통화정책을 두고 갈등을 빚던 중앙은행 총재가 돌연 사임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스트롱맨으로부터 위협받는 건 아니지만 정치적 이유로 비난이 거세 통화정책을 자유롭게 펴지 못하고 있는 중앙은행 총재들도 있다.

마크 카니 영국은행(BOE) 총재가 그런 경우. 카니 총재는 친(親)브렉시트 정치인들로부터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영국의 미래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그려 공포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통화정책 결정에 있어 정부의 입김이 거세진 것을 '뉴노멀'(새로운 정상상태)로 봐야한다는 시각도 있다. 펠스 고문은 최근 보고서에 "좋든 싫든 간에 (정부에) 의존적인 중앙은행과 영구적인 저금리, 그리고 양적완화라는 뉴노멀에 익숙해져라"고 썼다.

하지만 이처럼 정부의 압박은 거세지만 중앙은행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도 마땅치 않다는 점은 문제다. 전 세계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경기침체 당시 사들인 채권과 유가증권을 아직까지 엄청나게 보유하고 있어 돈을 더 풀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리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오는 11월부터 유럽중앙은행(ECB)을 이끌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달 블로그에 "높은 공공부채와 낮은 이자율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재정과 통화정책 여지가 제한적이다"라고 밝혔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역시 지난달 열린 중앙은행 포럼에서 "일시적 불황에도 (중앙은행이) 대응할 여지는 분명히 없다"고 주장했다.


10년 전과 달리 전 세계 경기 침체에 대비해 국제적인 공조를 취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점도 지적된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오히려 관세를 무기 삼아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ECB가 유로화 가치를 약화시켜 미국에 피해를 준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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