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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제재, 세계 IT 산업에 피해…'굴욕 외교'할 필요 없어"

권승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7.12 13:59

수정 2019.07.12 15:45

이재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이 12일 세종국책연구단지에서 진행된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 분서고가 전망' 현안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재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이 12일 세종국책연구단지에서 진행된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 분서고가 전망' 현안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부가 일본 정부의 수출 제한 조치와 관련해, '굴욕 외교'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가 한국뿐 아니라 미국·중국 등 전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에도 피해를 끼칠 수 있어서다. 이는 부품과 완제품간 공급 체인이 국경을 넘어 촘촘히 연결돼있는 IT 산업의 특성에 기인한다.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 정부에게 불리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시됐다.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이 꼬여버린 한일 갈등의 실타래를 풀어줄 열쇠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12일 세종 국책연구단지에서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 분석과 전망'을 주제로 현안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재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은 "일본의 수출 통제 조치는 전 세계의 서플라이 체인(공급 사슬)을 망가뜨리는 것"이라며 "일본이 복잡한 서플라이 체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번 규제를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조치가) 지속된다면 일본의 패착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얽히고설킨 공급사슬…세계 IT 산업에도 영향 불가피
반도체는 생산까지 걸리는 공정 단계가 최대 600가지에 이르고 60~120일이 소요될 만큼, 그 과정이 복잡하다. 그 과정에서 동원되는 부품, 소재, 설비 등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제품마다 공급 사슬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설비, 소재 업체들과 유기적인 소통을 하며 맞춤형 연구·개발(R&D)을 진행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또한 반도체 자체도 세트 제품의 부품에 해당한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제품이 탑재되는 미국, 중국의 제품을 생산하는 데도 타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강태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금융팀 선임연구위원은 "반도체 산업 생태계의 핵심은 기술 분업. 분업을 달리 말하면 서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인데 일본이 이 산업의 생태계를 한 번 깼다. 전 세계적으로 파장을 줄 것으로 본다. 일본 내부에서도 걱정하는 시선이 많다"고 설명했다.

■자국 산업 피해 발생하면 美·中 정부 직접 나설수도
수출 규제가 장기화될 경우 애플의 아이폰, 델과 HP의 데스크탑·노트북 등의 생산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들 제품에는 국내 업체에서 생산된 디스플레이 패널, 메모리 반도체 등이 탑재되기 때문이다. 강구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진경제실 부연구위원은 "자국 산업의 피해가 발생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구호 아래 적극적으로 이번 사안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중국에서도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이상훈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경제실 팀장은 "중국 기업은 한국으로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패널 관련 소재와 중간재를 수입해서 생산하기 때문에 부정적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중국의 메모리반도체 수입분 51.7%가 한국산이었다.

■일본과 협의, 저자세로 나갈 필요 없어
일본과의 협의 테이블에서 정부가 저자세로 임할 필요는 전혀 없다는 분석도 나왔다. 일본이 이날 도쿄에서 예정된 한일 양자 실무협의 형식을 '설명회'라고 주장하며 격을 깎아내린 데 대한 지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양자간 실무급 협의'라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정부가 굳이 '설명회'라는 주석을 붙인 이유는 협상에 앞어 기선제압을 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진경제실 실장은 "일본과의 협상 채널은 3~4년 정도 전부터 거의 중단된 상태"라며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산업통상자원부와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리젝(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에 일종의 레벨을 낮춰서 굴욕적인 처사를 하고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김 실장은 한국이 전략물자를 북한에 밀수출하고 있다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전략물자 관리 제도가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지 검증해 협의 급을 맞추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ktop@fnnews.com 권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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