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이주여성 10명중 4명 맞고사는 현실…신원보증폐지 무용지물

뉴스1

입력 2019.07.09 17:07

수정 2019.07.09 17:07

8일 오전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베트남 국적 아내를 무차별 폭행한 남편 A씨(36)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독자제공 동영상 캡처)2019.7.8/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8일 오전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베트남 국적 아내를 무차별 폭행한 남편 A씨(36)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이동하고 있다.(독자제공 동영상 캡처)2019.7.8/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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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민선희 기자,김민성 기자,서혜림 기자 = 베트남에서 온 서른살 아내는 한국인 남편에게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두살 배기 아들이 "엄마, 엄마"를 외치며 겁에 질린 채 울었지만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술에 취한 그는 아내를 때리며 "(베트남)음식 만들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내가 베트남 아니라고 했지?"라고 소리쳤다.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면서 국제적으로 공분을 샀다.
경찰 조사 결과 남편 A씨(36)는 "한국말이 서툴다"는 등 이유로 베트남인 아내 B씨(30)를 상습적으로 폭행했으며 아들도 때린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A씨는 특수상해, 아동학대 혐의로 구속됐다.

이번 폭행 사건과 관련해 이주민 인권단체들은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라며 "이주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실효성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10명 중 4명 가정폭력 피해…"신원보증제 폐지에도 남편동행 요구 많아"

우리나라의 결혼 이주 여성 10명 중 4명은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지난 2017년 7월부터 8월까지 결혼 이주 여성 9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387명으로 전체의 42.1%에 달했다. 하지만 가정폭력시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여성은 140명으로 도움을 요청한 119명보다 많았다.

이주민 인권단체들은 이주여성이 가정폭력 피해를 입어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이유로 내국인 배우자의 조력 없이는 이주 여성이 체류 연장이나, 영주권 획득, 귀화를 거의 할 수 없게 돼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주 여성들이 국내 체류 과정에서 내국인 배우자에게 종속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법무부는 지난 2011년 12월 결혼이주여성의 체류기간 연장이나 영주신청 때 한국인 배우자의 신원보증서 제출 제도를 폐지했다. 배우자의 신원보증제가 이주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에 제도를 없앤 것이다. 아울러 "귀화 시에도 신원보증서 제도 자체를 시행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주민 인권단체들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는 "2011년에 문서 제출은 없어진 게 맞다"면서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주여성들이 국적을 신청할 때 남편의 동행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으며, 남편이 함께 오지 않을 경우 면접으로 인정되지 않는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안순화 생각나무BB센터 대표도 "지금도 남편이 같이 가지 않으면 (체류)연장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남편의 등본은 필수"라고 밝혔다.

◇"이혼시 배우자 귀책사유 증명해야 체류 가능…아이 없으면 미등록체류자 가능성"

법무부는 결혼이민자가 한국인과 이혼하거나 배우자가 사망해 혼인관계가 단절됐더라도 본인에게 혼인단절의 주된 책임이 없으면 자녀 유무와 관계 없이 체류기간 연장·영주·귀화 신청을 할 수 있다고 소개한다. 또 가정폭력 피해를 당한 이주여성은 권리구제 절차가 종료되거나 종료 후에도 피해 회복을 위해 국내에 체류할 수 있다.

이 또한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유효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주민 인권단체들은 "결혼이주여성이 이혼한 경우 배우자의 귀책사유를 증명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며 "한국말과 법에 서툰 이주여성들이 폭력상황에 대처하고 녹음 및 녹취 등 증거자료를 모으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 공동대표는 "특히 아이가 없는 상황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말했다. 남편의 폭력으로 이혼했을 경우 한 번은 체류 연장을 할 수 있는데 이 체류 연장 기간이 보통 6개월~1년이고, 길어야 2년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그 다음에 또 체류를 연장할 때는 출입국에서 폭력으로 위자료도 받았고,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것도 아닌데 왜 연장하느냐고 한다"며 "이 때문에 폭력피해 이주여성도 아이가 없으면 이혼 뒤에 미등록 체류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신원보증제 완전폐지·별도 비자 신설 필요"…경찰도 대책 마련 방침

강 공동대표는 이주여성의 인권 보장을 위해서는 "신원보증제도의 완전한 폐지가 중요하다"며 "명목상이 아닌 실질적인 폐지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정폭력이든, 성폭력이든 폭력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들을 위한 안전한 비자 신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도 이주여성과 관련해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전날 '또 람' 베트남 공안부장관과 가진 '한-베트남 치안총수회담'에서 "지난 4일 베트남 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사건에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주여성들이 적극적으로 피해를 신고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할 것"이라며 "체류조건이나 국적확인 문제 등으로 참고 사는 여성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이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주 여성들이 체류 연장을 하고 서류를 낼 때 배우자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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