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동산일반

집값 잡으려 분양가 누르니 공급 '뚝'… 시장의 역습 [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30 16:14

수정 2019.06.30 18:47

부동산 쏟아지는 규제에 곳곳서 부작용
분양가 과도한 제한 '역풍'
서울 주요단지들 "이렇게 낮게는 분양 못해"..후분양 돌아서고 공급 끊기면 되레 집값 올라
1주택자 거주요건 강화했지만…
양도세 비과세 요건 까다로워지자 거래 줄어..대단지 입주에도 인근 집값·전셋값 요지부동
집값 잡으려 분양가 누르니 공급 '뚝'… 시장의 역습 [fn선임기자의 경제노트]
김관웅 부동산선임기자
김관웅 부동산선임기자
최근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오를 조짐이 보이자 정부가 주택시장에 대한 추가 규제를 내놓을 수 있다고 밝힌 가운데 시장에서는 정부의 주택시장 규제책이 오히려 집값을 끌어올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6일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부동산시장이 과열될 경우 준비하고 있는 여러 정책을 즉각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조만간 추가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놓은 정부의 규제가 오히려 집값만 올리고 있어 정부의 추가 대책이 또 집값만 자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지난 24일부터 신규 아파트의 분양가를 최대 10% 낮추는 내용의 '고분양가 사업장 심사기준 개선안'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개선안은 신규 분양 아파트의 분양가를 인근에서 1년 이내에 분양한 아파트가 있을 경우 그 아파트의 분양가를 넘지 못하게 하고, 분양후 1년 이상 지난 아파트만 있을 경우 그 아파트 분양가에 시세상승률을 반영하되 상승률은 아무리 많아도 5% 이내로 제한하며, 이미 준공한 아파트만 있는 경우는 주변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 주요 지역 재정비사업장의 아파트들이 "이렇게 낮은 금액으로는 분양을 할 수 없다"며 차라리 후분양으로 돌아서는 것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도심에서 신규 공급이 크게 줄어들어 새 아파트 공급부족이 심해진다. 한마디로 역풍을 맞게 된 셈이다. 실제 6월 말 분양을 시작하려던 서울 을지로 인근 세운3구역을 재개발하는 '힐스테이트 세운'이 분양일정을 중단했다. 시행사가 HUG와 분양가를 놓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후분양을 검토하고 나선 것이다.

앞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상아2차,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 3차, 서초구 잠원동 반포우성 등도 후분양으로 돌아서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또 강동구의 최대 규모 재건축단지인 둔촌주공도 후분양으로 공급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과도하게 분양가를 억제하면서 그 가격으로는 사업성이 도저히 나오지 않으니 금융조달을 통해서라도 후분양으로 진행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재건축·재개발 등 재정비 사업장의 신규 아파트가 후분양으로 공급된다면 해당 지역에서 공급이 일시적으로 끊긴다는 점이다. 이는 서울 강남권 등에서 기존 새 아파트의 희소성이 부각돼 가격 폭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또 2년 뒤에는 기존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후분양으로 공급되는 아파트는 분양가가 치솟을 수도 있다고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9·13 부동산대책'을 통해 1주택자라 하더라도 2년 이상 실거주를 해야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주겠다고 규제를 강화했다. 이는 주택시장을 교란시키는 갭투자자나 원정투자자들을 규제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치였지만 시장은 예상과 달리 반응했다.

얼마 전 입주를 모두 마무리한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인근의 한 공인중개업자는 "이 정도의 매머드급 단지에서 입주가 진행됐으면 주변 집값이 하락하고 전셋값도 급락해야 정상인데 이상하게도 잠깐 출렁이고는 이내 가격을 회복했다"며 "정부가 거주요건을 강화하면서 원소유주들이 계획을 바꿔 직접 입주하기로 하면서 매매나 전세거래 모두 당초 예상보다 훨씬 적게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2007년께 잠실 지역에 주공 1~4단지가 순차적으로 2만여가구가 입주하면서 잠실지역 집값과 전셋값이 거의 초토화됐는데 이번에는 헬리오시티는 물론이고 잠실 주요 지역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며 "이제 강동구 일대에서 2만여가구가 순차적으로 입주를 시작하지만 과거처럼 큰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업계 관계자는 "수요가 많은 서울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물량이 일시에 공급되면 집값이나 전셋값이 약세를 보여야 하는데 정부의 규제 타이밍이 공교롭게 맞아떨어지면서 오히려 해당 지역의 가격 방어를 도와주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9·13 부동산대책에서 9억원 이상 고가주택을 보유한 사람의 경우 1주택자라 하더라도 2년 미만 거주할 경우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현재 최대 80%에서 30%로 대폭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2020년부터 적용하기로 해 올 연말까지 실거주를 하지 않고 보유한 사람은 주택을 매물로 내놓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오히려 매물이 잠기는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주택시장이 저점을 찍고 난 2014년 이후에 매입한 사람들의 경우 지금 팔려고 해도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다 못 받기 때문에 매물을 오히려 더 보유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갭투자자의 경우 대부분 2014년 이후 매입한 사람들인데 그동안 거둔 양도차익은 크고,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을 다 채우려면 아직 몇 년이 더 필요한 상황에서 굳이 양도소득세를 다 내가면서 팔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앞서 정부는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을 독려하면서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매물이 더 사라지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주택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매물이 줄어든다는 것은 가격 변동성에 취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최근 일부 현금부자들이 움직이자 집값이 꿈틀대는 게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1000가구의 아파트 단지에서 예전에는 거래할 수 있는 매물이 50개가 있는 것과 5개 있는 것은 가격 변동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추가 대책을 내놓겠다고 엄포를 놨다. 주택시장이 다시 꿈틀대며 서울 강남권은 물론 강북 주요 지역 집값이 속속 전고점을 돌파하자 규제 카드를 꺼내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부는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금리인하 계획을 내비치고 있어 유동성 확대로 인해 그동안 잠잠했던 집값의 고삐가 풀릴 가능성도 높다.

조만간 나올 추가 규제에 포함될 내용 중 가장 유력한 것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다. 김 장관은 지난 26일 "고분양가는 심각한 문제다. 무주택 실소유자들이 집을 사기 어렵고 주변 분양가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HUG 방식으로 관리하는 것이 고분양가 관리인데 한계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발언을 미뤄 볼 때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도입이 점쳐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8년 6월 민간택지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관련규정을 만들어놓은 상태다.

그러나 현재 주택시장은 분양가가 계속 오르는 상황도 아니고, 거래량이 작년보다 급증세를 타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되면 공급량이 더 줄게 돼 기존 집값 상승만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만약 신규 분양가를 통제하면서 로또 청약을 없앨 수 있는 묘안이 있는데도 정부가 분양가를 통제해 주변 집값을 인위적으로 끌어내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데서 자꾸 정책이 꼬이는 것"이라며 "분양가 규제를 하고 과도한 청약 쏠림을 해소하고 싶다면 노무현정부 때 도입한 채권입찰제를 검토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정부가 다주택자만 타깃으로 삼아 감정적인 정책을 펴고 있고, 기존 집값을 끌어내리려고 하기 때문에 자꾸 정책이 잘못 나오는 것"이라며 "시장 메커니즘을 살려 거래가 원만하게 이뤄지면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시장이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는데 한쪽을 계속 누르다 보니 다른 쪽이 튀어오르는 정책 풍선효과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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