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초등생 성폭행범 감형' 뿔난 여론에..논란 진화 나선 法

이진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17 17:34

수정 2019.06.17 20:12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 1심 징역 8년→2심 3년
감형에 여성변회 비판 성명..청와대 청원도 '시끌' 
法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만으로 혐의 인정 부족"
피해자 증인신문 권유했으나 당사자 불출석 의사로 무산
"1심 증거능력 부여되지 않는 어머니 진술 유죄판결 이유로 삼아"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초등학생 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보습학원 원장이 항소심에서 형량이 줄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법원이 이례적으로 “증거가 부족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9부(한규현 부장판사)는 A씨(35)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등) 혐의 판결에 대한 후속 설명자료를 이날 내놓았다. 해당 재판부는 지난 13일 A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4월 채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알게 된 B양(10)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술을 마시게 한 뒤 양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B양이 13세 미만의 미성년자란 사실을 알지 못했고, 성행위는 합의하에 이뤄진 것이므로 폭행·협박한 사실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1·2심 모두 A씨가 미필적으로나마 B양을 13세 미만으로 인식하고, 이를 용인한 채 성행위를 했다고 인정했으나 형량의 차이는 컸다.


이에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법정형의 범위 중 가장 낮은 3년형을 선고했다는 것은 일반인의 건전한 상식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이 같은 결과는 매우 납득하기 어렵다”며 법원의 판결에 반발하는 성명을 냈다. 또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아동 성폭행범을 감형한 판사를 파면하라’는 청원이 올라와 약 8만2000명이 참여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형량이 줄어든 점에 대해 “유일한 직접 증거인 피해자에 대한 진술만으로 폭행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자료에서 밝혔다.

이번 사건의 공소사실과 관련한 직접적 증거는 영상 녹화물에 포함된 피해자 진술이 유일했다. 재판부는 B양의 진술만으로는 ‘A씨가 B양의 양손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누르는’ 방법으로 폭행한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B양은 “A씨로부터 직접적으로 폭행, 협박을 당한 사실은 없다”고 진술했다가 조사관이 ‘A씨가 그냥 누르기만 한 거야?’라는 취지로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재판부는 “이를 통해서 A씨가 B양의 몸을 누르게 된 경위, 누른 신체 부위, 행사한 유형력의 정도, A씨의 행위로 B양이 느낀 감정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며 “만 10시에 불과하다는 사정을 염두에 놓고 살펴봐도 녹화물 부분만으로 A씨가 몸을 누른 행위가 B양이 반항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검찰에 B양을 증인으로 신청할 것을 권유했으나 당사자가 불출석 의사를 밝힘에 따라 증인신문이 무산됐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1심에 대해서는 “B양의 진술을 내용으로 한 B양 어머니의 진술을 유죄판결의 이유로 삼았다”며 “원진술자가 진술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닌한 증거능력이 부여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고한 판례”라고 지적했다.

피해자 어머니 진술은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아 공소장 변경신청이 없이는 원칙적으로 무죄가 선고돼야 했지만, 형사소송법의 이념인 정의와 형평을 고려해 미성년자의제강간의 범죄사실을 직권으로 인정해 유죄판결을 내렸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일부 언론사에서 보도한 것처럼 재판부에서 피해자의 진술에 대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거듭 논란을 일축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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