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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로] 우물에 빠진 경제학

김태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16 17:02

수정 2019.06.16 17:02

[윤중로] 우물에 빠진 경제학

비용편익분석은 경제학의 주요 방법론 중 하나다. 복잡한 사회문제를 숫자로 환원해 정책입안자가 쉽고 소화하기 편한 방법으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기업은 물론 정부도 비용편익분석을 주로 이용하는 최대 고객이다. 부담스러운 정치적 판단을 배제하는 대신 정책의 편익이 비용을 상회할 경우 정책을 집행하는 구조가 용이해서다. 경제적 불평등이나 기후변화를 위시한 환경문제는 비용편익분석에서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현대 경제학의 주류로 자리잡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민낯이다.
개인주의와 최적화, 균형이론의 삼각축으로 철의 장막을 세웠다. 시장의 불균형과 불확실성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협소함과 몰역사성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가령 신고전학파는 산업혁명을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교체한 것처럼 주장한다. 사실은 19세기 내내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은 공존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인데도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에서 현실로 나오지 않는다. 경제와 현실의 접촉점이 실종되면서 자신들이 만든 합리적 가정으로 세운 모형 속에서만 현실을 진단하는 오류를 범한다. 온갖 수학적 공식과 통계로 뒤범범된, 대중은 모르는 우주적 언어가 이들의 존재 기반이다. 경제학의 도구가 수학적 순수함의 제단에 현실주의를 희생시켰다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작금의 국가채무위기나 재정확대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도 이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균형재정이라는 이 매력적인 단어가 주는 정치적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그만큼 콘텐츠는 부실하다는 증거다. 속을 파면 팔수록 균형재정의 빈약한 근거와 이를 주장하는 배경의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경제침체기에는 적자지출을 활용하고, 회복기에는 흑자재정을 유지하는 것이 정부의 기본적 책무다. 그런데도 현실의 요구를 외면한 채 균형재정 논리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것에 반대할 명분은 없다. 그렇지만 재정투입 필요성이 커질 때는 과감하게 풀어야 하는 게 경제운용의 이치다.

경제관료들이 흑자재정을 지키려 하는 것은 명백히 재정확대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균형재정은 경제성장의 과실을 나눠 갖는 대신 특정세력이 독점하거나 과점하는 구조를 지탱하는 지렛대다. 재정확대는 우리에게 가혹한 구조조정을 강요했던 국제통화기금(IMF)도 권고하고 있는 사안이다. 재정이라는 칼날을 움켜쥐고 조직 사수에 나선 경제관료와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학자들의 불순한 신성동맹에 균열이 필요하다. 이들에게 과도한 정책권한을 부여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정부부처 조직개편의 필요성은 이렇게 열린다. 정부조직 대수술을 통한 경제분야의 정책적 독점 해체와 다원주의를 기반으로 한 경제정책 전환은 시대적 화두다.

1992년 5월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에는 4명의 노벨경제학 수상자와 44명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경제학자들은 오늘날 방법론과 핵심 가정을 독점하고 있지만 종종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것 이상의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날 선 비판을 날렸다.


경제학자 조앤 로빈슨이 "경제문제의 해답은 오직 정치적 질문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 것도 협소한 경제논리를 빗댄 말이다. 무릇 정치적 논쟁의 틀을 앞으로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우리의 과제다.
우물에 빠진 경제학을 빨리 건져내야 한다.

ktitk@fnnews.com 김태경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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