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한전,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 과정서 주민 인권침해"

이병훈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13 12:07

수정 2019.06.13 14:07

지난 2013년 11월 경남 밀양시 단장면에서 81번 송전탑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2013년 11월 경남 밀양시 단장면에서 81번 송전탑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뉴스1

한국전력공사(한전)이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주민들의 건강이나 재산상 피해가 예견됐음에도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전은 주민들에게 사업 추진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고, 의견수렴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경찰은 송전탑 반대운동에 대해 과도한 경찰력 투입으로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정부의 경찰력 투입 지시 등에 대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한전, 밀양·청도 주민 건강·재산권 침해"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사건' 조사 결과, 건설 추진 과정에서 한전이 송전선 경과지 인근 주민들의 인권에 대한 주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13일 밝혔다.

조사위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 2003년 송전선 경과지로 밀양을 확정했으나 주민들은 2005년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한전이 개최한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도 전체 인구의 0.6%에 불과했다.

청도 주민 대부분도 2011년까지 환경영향평가 및 주민공청회가 있는지 몰랐다. 특히 청도 삼평리 이장은 2006년 주민공청회에 주민 50명이 참가한 것처럼 주민의견서를 위조해 군청에 접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조사위는 "주민들은 송전탑에서 나오는 전자파나 공사 과정의 소음이 트라우마가 됐고, 재산 피해도 심각했다"며 "한전은 직접적 이해관계자인 경과지 주민들의 건강권과 재산권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음에도, 이들의 인권에 대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2013년 밀양시의 ‘밀양 송전탑 관련 현황 보고’. /사진=경찰청 제공
2013년 밀양시의 ‘밀양 송전탑 관련 현황 보고’. /사진=경찰청 제공

■"경찰력 과도하게 동원…'비례 원칙' 위배"
또 인권조사위는 경찰도 과도하게 많은 경찰력을 투입하는 등 '과잉금지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실제 경찰은 2013년 10월 공사재개 경비 과정에서는 농성 인원(200여명) 대비 18배 수준인 3200여명의 경찰력을 동원했다. 2014년 6월 밀양시 행정대집행 때도 260여명 규모인 농성 인원에 대해 경찰 2100명을 투입한 것으로 조사 결과 드러났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경찰은 일반적으로 집회 인원 대비 5배 정도를 동원하는데, 이같은 관행을 봐도 (밀양·청도의 경찰력 동원은)과도한 것"이라며 "주민 입장에서는 경찰 수에 질려버리고, '무조건 진압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반발이 격화하는 역효과도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농성 인원의 움막을 찢고 주민들이 목에 매고 있던 절단기를 끊어내거나, 옷이 벗겨진 고령의 여성 주민들을 강제로 끌어내는 등 인권 침해 사례도 여러 건 확인됐다고 진상조사위는 밝혔다.

이같은 결과를 종합해 진상조사위는 경찰청장에게 해당 사건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고 사과할 것과, 경찰력 투입 요건과 절차 등에 대한 제도적 보완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한편 진상조사위는 정부가 직접 해당 사건에 관여했다는 단서를 포착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경찰의 공권력 남용은 국책사업이라는 대의명분 하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2013년 검·경, 밀양시, 경남도청 관계자가 모여 불법행위에 대한 공안대책회의를 거쳐 (반대 주민에 대한) 강경대응이 결정됐으며, 이후 이 기조가 이어져 왔다"고 설명했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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