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靑 일자리 상황판은 왜 녹색일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10 17:10 수정 : 2019.06.10 17:10

4월지표 19년만에 최악인데 적색신호 1개, 녹색신호 3개
대통령 눈과 귀 가리면 안돼

문재인 대통령이 "총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을 때 나는 참으로 의아했다. 대통령은 무얼 보고 저런 말을 할까. 실망을 넘어 울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취업길이 막혀 알바로 떠돌아다니는 청년 실업자들, 최저임금 때문에 해직된 저소득 근로자들, 인건비가 올라 적자폭이 더 커진 자영업자들, 경기가 얼어붙는 바람에 매출이 줄어 하루하루가 불안한 영세 기업주들… 내 주위에는 이런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들은 재작년보다 작년이 더 힘들었다고 말한다. 작년보다 올해는 훨씬 더 어렵다고 한다. 대통령이 그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이런 말은 꺼내지 않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그러나 문 대통령은 한 발 더 나갔다. "통계와 현장의 온도차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통계 수치가 좋을 때 쓰는 말이다. 통계는 좋은데 현장의 체감경기가 통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은 우리 경제상황을 나타내는 주요 통계가 좋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자료를 살펴봤다. 수출은 6개월째 줄어들었고, 1·4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 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4월의 고용지표는 19년 만에 최악을 기록했다. 게다가 국민경제의 마지막 보루인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섰다. 최근에 나온 주요 통계 중에서 좋다고 볼만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대통령은 누구에게서 어떤 보고를 받고 저런 말을 하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에서 심각한 오류를 발견했다. 현재 상황판은 4월 고용지표를 항목별로 적색과 녹색 두 가지 색깔로 구분해 표출하고 있다. 세부지표 4개 가운데 적색 신호가 하나, 녹색 신호가 세 개다. 적색은 '위험하다'는 뜻을, 녹색은 '안전하다'는 뜻을 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황판은 4월 고용통계에 대해 3대 1로 '안전 우세' 판정을 내리고 있다. 특히 실업률과 청년실업률을 모두 녹색 신호로 표시했다. 그런데 4월의 실업률과 청년실업률은 동월 기준으로 모두 19년 만에 가장 높다. 전년 동월과 비교해도 각각 0.3%포인트와 0.8%포인트나 높아졌다. 실업률이 높아진 것이 어떻게 안전한 신호일 수 있나. 밖에는 폭우가 쏟아지는데 청와대는 '맑음'이라고 쓰인 기상도를 펼쳐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했다. 취임 2주년 때 모 언론사와 가진 대담에서는 "요즘에도 일자리 상황판을 본다"고 했다. 적색 신호 1개와 녹색 신호 3개를 밝히고 있는 일자리 상황판은 명백한 오류다. 그 오류가 의도적인지, 단순한 착오인지는 알 수 없다. 어느 경우든 대통령에게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실패를 성공으로 꾸며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림으로써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정부 경제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이 '경제 성공' 발언을 한 다음 날 박지원 의원(민주평화당)이 모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이런 말을 했다. "대통령은 측근이 원수"라고. 탄핵당해 감옥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떠올려 보면 이 말에 공감이 간다. 문 대통령이 경제에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경제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은 대통령의 판단을 그르치게 할 위험이 크다. 당장 고쳐야 한다. 이런 것이 일자리 상황판뿐일까. 주위를 세심하게 살펴봐야 할 때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
네이버채널안내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광고 닫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