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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메이의 씁쓸한 사퇴

김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07 17:37

수정 2019.06.07 17:37

[월드리포트] 메이의 씁쓸한 사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7일(현지시간) 당 대표직을 사임하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지난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한 지 3년여가 흘렀지만 브렉시트를 매듭짓지 못한 탓이다. 브렉시트를 두고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 '리더십 부재'로 1000일 가까이 허송세월했다는 지탄도 피하지 못했다.

브렉시트 여파로 사퇴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를 이어 총리직을 맡게 된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를 놓고 찬반으로 갈라진 영국 사회를 통합할 '강력하고 검증된 리더십'을 기반으로 압도적 지지를 받아 2016년 7월 13일 마거릿 대처 이후 두 번째 여성 총리이자 제76대 총리에 취임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로봇'으로 불렸던 메이 총리는 지난 5월 말 사임 의사를 밝히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메이 총리는 사임계획을 밝히면서 "하원이 (EU와 영국 정부가 마련한) 브렉시트 합의안을 지지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면서 "그러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비쳤다.
뉴욕타임스(NYT)는 "메이 총리는 지난 2016년 7월 그녀가 만든 것이 아닌, 엉망진창인 것을 치우기 위해 단지 하나의 과업인 브렉시트를 위해 다우닝가로 이사했다"며 "그러나 그녀는 실패했다"고 전했다.

NYT는 "메이 총리가 공들여 EU와 협상한 내용을 영국 의회로부터 거듭 거절당하면서 브렉시트를 두고 이전보다 더 분열된 국가를 직면하게 됐다"면서 "메이 총리는 적어도 모든 뒷담화와 손가락질을 참아내야 했고, 정치는 이를 동정할 시간이 없었고, 관심은 곧장 다음으로 넘어갔다"고 부연했다. 이어 "브렉시트가 지지부진한 상황이 전적으로 메이 총리의 잘못인지 아니면 불가능한 임무를 부여받은 것인지 잠시 멈추고 물어볼 가치가 있다"며 "메이 총리가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중요한 시점에서 우유부단했다"고 평가했다.

어쩌면 예견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다만 영국 정계는 차기 총리를 두고 예측 불가성에 대처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차기 총리가 선출되지 않은 가운데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는 인물에 대한 불신임 투표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 브렉시트 총리인 보수당 대표를 뽑기 위한 절차는 오는 13일 첫 투표를 시작으로 7월까지 이어진다. 현재 출사표를 던진 당대표 후보는 보리스 존슨 전 외무부 장관, 마이클 고브 환경부 장관, 제러미 헌트 외무부 장관 등 10여명이다. 보수당은 오는 7월 26일까지는 신임 당대표를 선출할 방침이다. 현재 차기 총리 후보로는 브렉시트 강경파인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존슨 전 장관은 아무런 협상 없이 EU를 탈퇴하는 이른바 노딜(No Deal)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존슨은 최근 캠페인 영상을 통해 영국이 10월 31일 EU를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노딜 브렉시트 발언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제1야당인 노동당을 비롯해 보수당 내에서조차 노딜 브렉시트를 불사하겠다는 신임 총리 후보를 깊이 우려하는 의원들이 다수"라며 "존슨 전 장관이 당대표가 될 경우 즉시 총리직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하기도 했다.


지난 3년여간 브렉시트를 해결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미래상을 내놓지 못한 메이 총리는 물러난다. 그러나 신임 총리가 결정되지 않은 가운데 불신임 투표가 벌써 거론되는 것은 기우다.
브렉시트를 이행하기까지 수많은 돌다리를 두드렸으면 이제는 영국의 운명을 좌우할 결정을 내릴 때도 된 것 같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글로벌콘텐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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