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시리즈]

이름없는 유기견 치료 15년… "생명 다루는 일 자체가 의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06 17:56 수정 : 2019.06.06 22:47

로얄동물메디컬센터 정인성 원장
수의사로 반복된 병원생활 하던중 의미있는 일 하고 싶다는 꿈 키워
병원 고객의 15년 전 요청으로 남양주 보호소 등에서 치료 시작
"테마파크 같은 요양병원 짓고싶어..봉사하는 수의사 많음을 알아달라"

로얄동물메디컬센터 정인성 원장 사진=김범석 기자
경기 남양주시 깊은 산 속에 위치한 남양주 유기견 보호소. 커다란 유기견 한마리가 자원봉사자들의 품에 안겨 온다. 보호소 근처 공장에서 버려진 삽살개와 진돗개 사이에서 태어난 6마리 새끼 중 하나다. 이름 없이 '2호'라 불리는 이 유기견을 중성화시키려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2호' 외에도 20여마리의 유기견들이 중성화수술을 받으려 대기 중이다. 기자가 찾은 보호소 내 창고에 마련된 수술대 앞에서 정인성 로얄동물메디컬센터 원장과 의료진들은 유기견의 상태를 꼼꼼히 점검하고 있었다.

캄캄한 창고 안에서 램프 하나에 의지해 수술에 집중한 정 원장과 의료진은 '눈이 더욱 침침해진다'고 웃었다. 유기견 230여마리가 모인 이곳 보호소의 임정애 소장은 "이렇게 방치된 유기견들은 구출하지 않을 경우 식용으로 팔려간다"면서 "예전에 정 원장 병원 근처에 살면서 유기견들의 치료를 맡겼고 벌써 12년째 정 원장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15년 전 병원 고객의 요청으로 시작한 유기견 치료를 비롯해 중성화수술 자원봉사를 시작한 정인성 원장은 단순히 돈만 버는 수의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다짐을 점차 현실화시키고 있다.

남양주 유기견 보호소 창고에 마련된 수술대 위에서 정인성 로얄동물메디컬센터 원장(오른쪽)과 의료진이 유기견을 치료하고 있다. 사진=김범석 기자

유기견들의 무분별한 번식을 막고 보호소 내 안전한 관리를 위해선 중성화수술이 필수다. 그동안 정 원장이 중성화수술을 시킨 유기견만 얼추 1500마리가 넘는다. 수십마리의 유기견을 한번에 병원으로 데려오기 어려운 만큼 그는 직접 현장으로 달려간다.

정 원장은 단순히 중성화수술만 하는 게 아니다. 중성화수술 직전 장이 빠지거나 유선에 종양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정 원장은 이러한 유기견에 대한 의료지원까지 도맡는다. 이 경우 따로 병원으로 데려와 치료한다. 정 원장은 "구출된 유기견 중 수술을 안하면 안될 정도는 다시 저희가 고쳐서 보낸다"며 "살아있는 생명이 질환으로 위험에 처했을 때 치료해서 정상으로 만들어주는 것 자체가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보호소의 유기견들 사진=김범석 기자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

25년째 외과 전문 수의사 생활을 하고 있는 정 원장은 하루하루 의미 없이 병원을 운영하는 자신에 의구심이 들었다고 한다. 1994년 수의 외과 대학원을 마친 뒤 동물병원을 개업했으나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생활에서 탈피해 무언가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고, 우연히 병원 고객의 요청으로 시작한 유기견 치료가 자원봉사의 발단이 됐다. 정 원장은 "15년 전쯤 한 병원 고객의 요청으로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그분이 개를 많이 키우는 줄 알았다"며 "가 보니 유기견 50여마리를 키우고 계시더라. 가정집에서 유기견 중 몇 마리를 중성화해 보니 이런 일은 좀 도와줘야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유기동물 구조 및 입양단체인 CRK와 협력하고 있다. CRK에서 유기견들을 매 분기마다 30~40마리 정도 모아놓으면 정 원장은 현장에 달려간다. 정 원장이 12년째 이 같은 자원봉사에 나서면서 2017년에 CRK는 정 원장에게 감사패를 전했다.
치료를 마친 유기견을 살펴보는 의료진 사진=김범석 기자


■유기견 테마파크 조성도 목표

정 원장의 목표는 유기견 테마파크 조성이다. 그나마 남양주 유기견 보호소와 같이 시설이 양호한 곳도 있지만 많은 사설 보호소가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본 유학 당시 은사 야마네 요시히로 전 일본 수의사회 회장의 영향을 받은 그는 현직에 있을 때부터 이런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정 원장은 "은퇴 이후 유기견 보호소를 테마파크와 비슷하게 만들고 싶다"며 "원주에 10만평(33만570㎡) 정도 땅도 사놓아 자리도 만들었다. 유기견의 재활 병원과 반려견 요양병원을 해볼까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수의학에 대한 그의 열정 또한 자원봉사 의지에 뒤지지 않는다. 정 원장은 "수의학을 더 잘해 사람의사보다 뛰어난 동물의사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동물병원 외에도 그가 연구소를 만든 이유다. 의사와 수의사 교육, 간호 테크니션 등의 기술적 훈련을 비롯해 의료기술 개발 등을 다룰 연구소를 송도에 조성한 정 원장은 교육기관 겸 연구소로 한국 의료산업·수의학 발전에 일조하겠다는 포부도 전했다. 정 원장의 이러한 활동은 수의사에 대한 인식 개선과도 맥이 닿아있다.
그는 "현직에서 고생하면서도 바쁜 와중에도 유기견들을 돌보는 수의사들이 많음을 알아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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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kim01@fnnews.com 김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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