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셰일가스와 희토류 사이에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6.05 17:17 수정 : 2019.06.05 18:24

미중 기술 냉전의 본질은 패권 다툼이자 문명충돌
큰 그림 보며 자강 꾀해야

지난달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을 백악관으로 초대했다. 롯데케미칼이 셰일가스 집산지인 루이지애나주에 에틸렌 공장을 세우자 각별히 예우한 것이다. 유통이 주력인 롯데그룹이 글로벌 화학기업으로 변신하려는 순간이었다. 중국의 '사드 보복'에 따른 출구전략이기도 했지만.

이는 이른바 셰일혁명의 '나비효과'다. 평생을 진흙 퇴적층인 셰일층 석유 개발에 미쳐 살던 조지 미첼조차 이런 조화를 예상이나 했을까. 텍사스의 유전도시 갤버스턴에서 구두닦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말년에 '수압파쇄공법'이란 대박을 터뜨렸다.

2013년 작고한 미첼이 여전히 세상을 바꾸고 있다. 중동 산유국의 에너지 헤게모니는 셰일오일을 수출하는 미국으로 이동 중이다. 최근 미국의 이란 압박정책에도 자원전쟁에 대한 자신감이 배어 있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셰일혁명으로 날개를 단 격이다. 그는 기술절취와 백도어 해킹 등을 빌미로 중국의 5G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고사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자 중국도 희토류 금수 등으로 맞불을 놓을 참이다. 희토류는 스마트폰과 항공기 엔진, 레이더와 위성 등 첨단제품에 필수적인 '산업 비타민'이다. 중국이 매장량과 생산량 모두 세계 1위다. 미국도 현재 80%를 중국산에 의존 중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얼마 전 장시성의 희토류 생산·가공업체를 방문해 대미 '시위'를 벌였다.

이를 세계 언론은 '기술 냉전'의 개막으로 해석한다. 과거 미·소 냉전처럼 본질은 패권다툼이다. 그런 만큼 승패를 당장 점치기는 어렵다. 다만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화하더라도 미국에 미칠 타격은 제한적이라는 관측이다. 수입선을 호주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는 데다 희토류는 셰일가스를 채굴하는 과정에서도 얻을 수 있어서다.

문제는 한국이 넛크래커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반(反)화웨이 연합군'에 동참을 요구하는 미국과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참여를 바라는 중국 사이에서.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최근 '화웨이 설비수입을 중단하면 한국 기업의 손실은 수십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만일 중국이 한국 기업에 보복조치를 취하면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고 위협하면서다.

중국 시장에 기대느라 한·미 동맹을 저버리는 건 더 위험하다. 롯데쇼핑이 중국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건 제쳐두더라도 베이징현대차가 고전하는 까닭이 뭔가. 글로벌 분업구조에서 중국이 한국을 더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정황이다.

'경제 냉전'이 내포한 문명충돌적 요소도 주목해야 한다. 소득이 높아지면 필연적으로 민주화가 도래한다는 이론이 있다. 그러나 중국은 경제발전과 함께 무제한적으로 빅데이터 및 개인정보 이용이 가능해지자 정치적 자유를 옥죄며 다원주의 등 서구 가치에 외려 반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원천기술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복지 등 여러 측면에서 아직 '미국적 표준'이 세계 문명사의 주류에 가까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미 동맹의 기초 위에서 사안별로 미·중을 설득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 이에 대한 문재인정부의 '빅 픽처'가 보이지 않아서 문제다.
북한만 쳐다보다 지경학적 대폭발을 향한 인계철선이 타들어가는 걸 놓친다면 큰일이다. 물론 미·중 간 줄타기보다 더 중요한 건 자강(自强) 노력이다. 이를 소홀히 하면서 이 나라 저 나라에 기대려다 망국을 자초한 구한말의 흑역사를 되새길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네이버채널안내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광고 닫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