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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맞는 효자, 게임]"바보야, 문제는 게임이 아니야"

뉴스1

입력 2019.05.29 07:00

수정 2019.05.29 09:30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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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문제는 게임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사람의 환경

[편집자주]한 20대 여성이 젖먹이 아이를 돌보지 않고 온라인게임에만 빠져 아이를 방치했다가, 결국 아이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도대체 '게임중독'이 어떻길래 모성까지 억누르는 것이냐는 비난이 쇄도했다. 아직 20대인 여성이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를 혼자 양육하다가 우울증에 걸렸고, 모든 대인관계도 단절한채 오직 게임으로만 빠져들었던 것은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한 것은 이같은 사회적 현상을 간과하고 표면적인 부분만 봤다는 지적이 거세다. <뉴스1>은 게임의 질병분류 논란을 2편에 걸쳐 진단한다.

(서울=뉴스1) 강은성 기자 = #. 소위 '게임 중독'이라는 청소년의 뇌를 기능성자기공명촬영(fMRI)으로 스캔해보니 적당히 게임을 하는 또래 청소년의 뇌와는 분명히 달랐다.
일반 뇌보다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는 부분이 많았고 그 흥분이 쉽게 가라앉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청소년은 게임중독이면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동시에 앓고 있었다. 우울증이 있는 청소년도 게임 과몰입 현상을 보였는데 뇌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는 현상을 보였다. 과연 '게임'이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수 있을까? 연구진은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과몰입 등 이용장애현상을 '정신질환'의 한 종류로 규정하기로 하면서 국내에서도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한 것을 두고 반대 측과 찬성 측의 의견이 첨예하게 충돌하는가 하면 소관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도 각기 다른 입장을 내세우며 대립각을 세우는 형국이다.


◇게임질병이라면서 '인터넷중독 지표' 들이대…근거 부족


지난 25일 WHO는 제 72차 세계보건총회를 열고 국제질병사인분류(ICD)의 11번째 개정안(ICD-11)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ICD-11에는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에 질병코드(6C51)를 부여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문제는 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 과정에서 아직도 과학적 근거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WHO 스스로도 이번 의결을 위해 참고한 연구결과가 '매우 한정된 소수의 사람들'(only a small portion of people who engage in digital- or video gaming activities)을 대상으로 진행했다고 인정한다.

임상혁 한국게임법과정책학회장(법학박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은 "이번 WHO 의결의 근거가 된 의학논문을 살펴보면 'IAT 지표'라는 30개 항목의 설문조사 결과를 주요 근거로 삼고 있는데 이 IAT지표는 게임중독 판별을 위한 문항이 아니라 '인터넷중독'을 판별하기 위한 문항"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게임 이용장애가 뇌구조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마약중독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끊어낼 수 없는 지경에 빠지도록 하는 '중독성'을 갖고 있다는 연구를 이번 WHO 의결의 근거로 제출했다. 하지만 정작 연구자체는 게임이 아닌 '인터넷 중독 지표'에 기반하는 오류를 범한 셈이다.

임 회장은 "학자들의 논문을 보면 많은 경우 인터넷 중독과 게임중독의 연구결과를 혼용해 사용하고 있다"면서 "연구방법론에 심각한 결함이 보이기 때문에 게임이용장애 자체를 중독이라는 질병코드로 분류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게임중독이 우울증을? 우울증이 게임중독을?…원인 미상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에 걸쳐 800여건의 뇌 기능자기공명촬영(fMRI) 등을 통해 게임중독현상과 정신질환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우울증을 앓거나 ADHD 등을 앓고 있는 정신질환자가 게임과몰입에 빠질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자기통제력'이 낮게 나타났는데 게임을 적당히 하다가 중단하는 통제력이 일반인보다 낮기 때문에 이른바 '게임 중독' 현상도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셈이다.

한 교수는 "게임 과몰입 증상을 보이는 이용자의 fMRI를 촬영해봤을 때 뇌가 활성화되는 양상이 ADHD나 우울증을 앓는 환자의 뇌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면서 "게임 과몰입 환자는 ADHD·우울증·충동조절장애 등과 같은 정신 질환 증세를 보이는 '공존 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게임 자체가 우울증이나 ADHD, 자기통제력 약화 등을 유발했는지 '인과관계' 자체는 입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교수는 게임중독 때문에 ADHD와 같은 정신 질환이 오는 것이 아니라 ADHD 증상 때문에 게임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는 "게임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 학교, 사회 등 개인의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정신질환을 앓게 되고 그 형태가 게임 과몰입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를 발주한 강경석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본부장도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등재하는 것은 이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착오한데서 나온 잘못된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술이나 마약 등 뇌와 인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물질은 중독이 됐을 때 '약'을 사용해 치료를 해야 하지만 게임은 그 자체가 원인물질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게임이 아니라 게임을 하는 사람의 환경

콘텐츠진흥원이 지난 5년간 게임을 이용하는 청소년 2000명에 대한 추적연구를 한 결과 게임과몰입 현상을 보이는 청소년들은 가정에서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과도한 스트레스, 우울감, 공격성 등을 보이는 경향이 강했다.

강 본부장은 "이는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의 문제"라면서 "이번 조사에서는 가정이나 학교에서 문제가 있는 청소년들이 게임에 과몰입하는 경향을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개인이 가지고 있는 스트레스나 공격성 등도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상황을 보였다"고 말했다.


게임과몰입 치유를 위한 상담센터 현장에 직접 근무하는 전문가들도 동일한 목소리를 낸다.

전영순 게임과몰입 힐링센터 팀장(임상심리전문가)은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보면 아이들이 게임만 해서 과몰입 진단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면서 "게임에 과몰입하게 되는 동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연구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 팀장은 이어 "게임 중독은 치료적 방법보다 관리적 측면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게임 과몰입이라는 현상 자체뿐만 아니라 개인의 심리, 사회적 측면 등을 고려해야 제대로 된 치료 또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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