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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화웨이와 늑대문화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27 17:40

수정 2019.05.27 17:49

늑대는 사냥할 때 작전을 짜는 거의 유일한 동물이다. 무리지어 생활하는 늑대들은 척후, 유인, 잠복, 포위 등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줄 안다. 엄격한 계급사회를 이루고 있는 이들은 우두머리 수컷을 중심으로 개체들이 기민하게 움직이는 투지와 협동을 통해 사냥감의 숨통을 끊어놓는다. 적자생존의 초원에서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중국 화웨이는 흔히 늑대에 비유된다. '화웨이 웨이'의 저자 양샤오룽은 "한번 피 냄새를 맡으면 떼를 지어 공격하는 늑대처럼, 화웨이는 경쟁자에 대한 공세와 개인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늑대문화를 앞세워 세계시장을 장악했다"고 했다.
이어 "이들에게는 '승리하면 함께 축배를 들고 패하면 목숨을 걸고 서로를 구한다'거나 '힘들지만 용기를 내 마침내 승리를 거둔다'는 식의 구호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고도 했다. 밖에서 보기엔 살벌할 수도 있는 이런 분위기가 화웨이를 창업 30년 만에 세계적인 IT기업으로 성장시킨 힘이라고 양샤오룽은 말한다.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75)은 자신들의 기업문화를 설명하면서 실제로 늑대를 거론하기도 했다. 창립 10주년을 맞은 지난 1997년 런정페이는 "늑대의 세 가지 특징은 예민한 후각, 불굴의 투쟁심, 협업정신"이라면서 "가진 것이 없다고 걱정하지 말고 노력하지 않는 것을 걱정하라"는 메시지를 직원들에게 전달했다. '희생은 군인의 소명이며, 승리는 군인의 가장 큰 기여'라는 글귀를 본사 벽면에 써놓는, 인민해방군 통신장교 출신다운 경영철학이다.


하지만 이 같은 늑대문화가 화웨이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미·중 무역분쟁의 한가운데 놓인 화웨이에 관한 기사를 출고하면서 "화웨이를 일으켜 세운 이 늑대문화가 그들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보도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법과 규율을 어기는 것을 용인하는 분위기, 집단적 가치를 강요하는 군대식 문화, 중국 공산당과 유사한 기업운영 시스템 같은 것들이 결국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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