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1960년대 퀘벡으로… 기억의 여정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27 16:33

수정 2019.05.27 19:03

加연출가 로베르 르빠주 내한
자전적 연극 '887' 무대 올려
연극 '887'
연극 '887'

캐나다의 공연 연출가 로베르 르빠주(62)가 12년 만에 내한해 자전적 연극 '887'을 선보인다. 르빠주는 혁신적 무대 연출과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현대 연극의 경계를 확장시킨 거장. 레지옹 도뇌르 훈장은 물론이고 유럽연극상, 글렌 굴드상 등을 휩쓸었고, '태양의 서커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등을 연출했다.

학창 시절, 성 정체성 문제로 우울증을 앓다 연극을 통해 이를 극복하면서 공연 예술계에 몸담게 됐다. 1980년 퀘백 시립극단에서 배우이자 연출가로 경력을 시작했고, 1991년 실연의 아픔을 투영한 자전적 연극 '바늘과 아편'이 캐나다의 권위 있는 샤머스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국내에서는 2007년 '안데르센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2015년 '바늘과 아편', 2018년 '달의 저편'이 공연됐다. 르빠주가 직접 출연한 것은 '안데르센 프로젝트'이후 처음이다.


르빠주의 연극 대부분이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1인극이다. 1인극의 공백은 이미지나 영상, 첨단 장치 등 독창적인 무대 미학으로 채워왔다. 이번 작품 '887'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제목 '887'은 르빠주 자신이 어릴 때 살았던 집의 주소에서 따온 것이다. 광대한 기억의 여정을 그린 이 작품에는 르빠주만 출연한다. 복합적인 플롯, 다양하게 변신하는 세트를 통해 '무대 위의 마술사'의 진면모를 보여줄 예정이다.

이번 연극에서 르빠주는 '시의 밤' 기념식에서 낭송하기로 한 시가 잘 외워지지 않자 고대 그리스의 기억법을 떠올린다. 익숙한 장소나 공간에 외워야 할 사항들을 배치해뒀다 재조합시키는 이른바 '기억의 궁전' 기억법이다. 그는 어릴 적 살았던 퀘벡 머레이가 887번지에 있던 아파트를 기억의 궁전으로 삼는다. 택시를 몰던 아버지, 어머니와 세 형제, 치매를 앓던 할머니까지 7명의 대가족이 부대끼며 살던 곳이다.

회전식 세트는 건물의 내외부를 보여주고, 르빠주는 그곳을 들여다보며 가족뿐만 아니라 개성 넘치는 이웃들, 1960년대 조용한 혁명의 물결 속에서 정치·사회적 변혁을 겪으며 나름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해갔던 퀘벡의 근대사를 떠올린다.
세월이 지나도 그리운 그때 그 지역의 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르빠주는 "개인적 기억에 대한 탐구가 나를 계급투쟁과 정체성의 위기를 켰던 1960년대의 퀘벡으로 이끌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라고 털어놨다.
"'887'은 사춘기 이전의 기억, 정치적인 것과 시적인 것이 종종 융합되는 그 시절 기억으로의 여정이면서 동시에 소문자 h로 된 역사(history)를 탐구함으로써 대문자 H로 된 역사(History)를 더욱 잘 이해하고자 하는 겸손한 시도입니다." (5월 29일~6월2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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