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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이슬람 혁명 40년, 기로에 선 美·이란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24 17:26

수정 2019.05.24 17:26

[월드리포트] 이슬람 혁명 40년, 기로에 선 美·이란

1979년 5월, 이슬람 혁명 직후였던 이란의 반미감정은 아직 최악은 아니었다. 물론 미국 정부가 혁명으로 몰락한 팔레비 왕조를 지원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반감은 있었지만 민중의 분노는 우선 해외로 도망간 마지막 왕, 무함마드 레자 샤에게 쏠려 있었다. 영국 BBC는 2016년 보도에서 해금된 극비문서를 인용해 당시 미국 카터 정부가 이슬람 혁명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란으로 귀국하기 전에 그와 미리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호메이니는 미국 정부에 혁명 이후 이란 내 미국의 이익을 훼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미국은 혁명 당시 왕당파 군부의 쿠데타를 방해해 정권교체를 어느 정도 눈감아줬다.

그러나 사태를 최악으로 몰고 간 것은 카터 정부의 사소해 보였던 오판이었다. 미국은 샤의 망명을 허가했고, 궐석재판에서 샤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던 이란 혁명정부와 국민은 자신들의 역적을 빼돌린 미국에 분노했다.
결국 1979년 11월 이란 대학생들이 테헤란 미국대사관을 점거해 인질극을 벌였고,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단교와 경제제재로 점철되는 사이로 추락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이란의 반미감정은 아직 최악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이란 핵합의 탈퇴 이후 경제제재를 복원하면서 이란에 대한 강경 발언을 쏟아냈지만 이란과 전쟁 자체는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 전쟁까지 생각하고 있는 정부 내 강경파들을 달래면서 최대한 이란에 겁을 줘 총을 쏘지 않고 내년 미국 대선 전까지 유리한 협상을 하는 것이 목표다.

이란 역시 미국이 어떤 생각인지 알고 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이달 연설에서 "이 대결은 군사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나 미국 어느 쪽도 전쟁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전쟁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말했다. 이란 정부는 일단 미국의 위협에 굴복해서 불리한 협상을 하느니 내년 미국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길 기다려 그다음에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양측이 지금 같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국제사회는 우발적 전쟁을 걱정하고 있다. 일단 가장 불안한 곳은 이란 정치권이다. 이슬람 혁명이 끝난 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 혁명 이후 태어난 세대들은 해묵은 서방의 경제제재와 실업난, 생활고에 고통받고 있다. 이란 젊은이들은 트럼프 정부가 이란 압박을 가속화한 2017년 12월에 혁명 이후 자리를 잡은 이슬람 신정 정치와 보수 군부에 대항해 대대적 시위를 일으켰다. 그러나 미국의 압박이 더욱 거세지자 이제는 미국과 대결을 원하는 보수 세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란 의회 강경파는 지난 2월 서방과 대화를 추구했던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했다. 권력누수를 체감하고 있는 로하니 대통령은 이달 국영방송을 통해 미국과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만큼 1980년대 이라크와 전쟁 당시 운영했던 전시 비상회의를 소집, 대통령 권한을 확대하겠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미국은 이란을 견제해 달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압박, 각종 민병대와 무장조직을 지원해 중동 내 이란의 입지를 넓히고 있는 이란을 두고 대응 수위를 고민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이달 트럼프 정부가 중동에 최대 1만명의 미군을 추가 파견하기 위해 검토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이란은 다시금 긴장 속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대치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현 상황에서 양측이 내린 사소해 보이는 결단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분명해 보인다.

pjw@fnnews.com 박종원 글로벌콘텐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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