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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암호화폐 투자 가로막는 정부 정책

허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16 17:20

수정 2019.05.16 17:20

[여의도에서] 암호화폐 투자 가로막는 정부 정책

비트코인이 1년여 만에 1000만원 고지를 눈앞에 두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월 500만원을 돌파한 비트코인은 불과 한달여 만에 2배가량 올라 1000만원이 눈앞이다. 암호화폐거래소에도 가입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투자자들은 여전히 불안한 암호화폐 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 국내 대표 거래소 이용자조차 신규회원들은 은행의 실명확인 가상계좌를 발급받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은행에서는 암호화폐 거래를 하기 위해 통장을 발급하겠다고 하면 아예 계좌발급을 거부한다.


국내 4대 거래소로 불리는 업비트와 빗썸, 코인원, 코빗을 제외한 다른 수십개 거래소들은 법인계좌로 회원들의 돈을 입금받는 '벌집계좌' 형태의 영업을 하고 있다. 벌집계좌는 본인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자금세탁 등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 또 해킹으로 장부가 조작될 경우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보호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벌집계좌를 운영하는 거래소도 시중은행을 통해 실명확인 가상계좌를 받아 영업하길 원한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거래소에 실명확인 가상계좌 발급을 해주지 않는다. 정부의 묵시적 압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제도 마련을 미뤄두는 동안 우리 국민들은 불투명하고 불안한 암호화폐 거래로 내몰렸다. 암호화폐 투자의 탈을 쓴 사기범죄들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때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을 선도했던 한국의 위상도 쪼그라들었다.

우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미국과 일본은 암호화폐 거래제도를 마련하며 기틀을 잡았다.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는 라이선스를 발급한다. 투자자들은 이를 믿고 안전하고 투명하게 암호화폐를 거래한다. 이번 비트코인 급등이 미국과 일본의 자금이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동남아 주요 국가들도 앞다퉈 암호화폐 거래제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인도네시아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직접 암호화폐를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같은 신기술이라며 적극 장려했다. 암호화폐거래소 허가제를 운영 중이다. 태국은 증권사들이 암호화폐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도 암호화폐거래소 허가제를 도입하고, 호가와 거래자 등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내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암호화폐 대표주자인 비트코인은 미·중 무역전쟁 상황에 안전자산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외신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도 암호화폐를 활용한 비즈니스를 발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이미 스타벅스, 페이스북 등의 사례는 여러차례 소개됐다. 삼성전자 역시 갤럭시S10에 이어 중저가폰에도 암호화폐 지갑을 탑재하겠다고 발표했다. 카카오도 내달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선보인다.

전 세계 국가와 글로벌 기업들이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여전히 암호화폐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가상징표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암호화폐가 가상징표인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을 나중으로 미뤄두더라도 이미 수십만, 어쩌면 수백만 국민이 투자하고 있을지도 모를 암호화폐 거래제도는 손질해야 한다. 투자실패의 책임까지 국가가 지라는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국민이 암호화폐에 투명하고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은 마련해야 한다.

jjoony@fnnews.com 허준 블록포스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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