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정순민 칼럼] '징비록'을 읽어야 하는 이유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5.15 17:16

수정 2019.05.16 11:08

한국당이 낸 경제실정백서
반대파의 목소리도 들어야 위기의 한국경제 해법나와
[정순민 칼럼] '징비록'을 읽어야 하는 이유

'징비록(懲毖錄)'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1542~1607)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임란의 경과를 기록하고 그 원인을 분석한 책이다. 제목은 시경(詩經)의 '내 지난날 잘못을 응징하고 훗날 닥칠 환란을 미리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는 구절에서 따왔다. 류성룡은 책머리에 "매번 지난 난중(亂中)의 일을 생각하면 아닌 게 아니라 황송스러움과 부끄러움에 몸 둘 곳을 알지 못해왔다"면서 "비록 볼만한 것은 없으나 역시 모두 당시의 사적(事蹟)이라 버릴 수가 없었다"고 썼다.

자유한국당 경제실정백서특위(위원장 김광림)가 지난주 '문정권 경제실정 징비록'이라는 제목의 백서를 냈다. 백서는 머리말에서 "경제를 망가뜨리고 국민을 고통에 빠트린 문재인 정권의 좌파 경제 실험의 진행과정을 소상히 기록했다"면서 "향후 경제파탄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리는 첫걸음인 만큼 징비록이라고 명명했다"고 밝혔다. 백서는 또 "우리가 그동안 어렵게 쌓은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음을 느낀다"면서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뜨리는 것은 쉽다는 점을 지난 2년이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고도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자유한국당 지지자는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누구를 선택했는지 여기서 소상히 밝힐 순 없지만, 적어도 2번을 찍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굳이 분류하자면 진보도, 보수도 아닌 중도파, 무당파에 가깝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독재 타도"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것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쪽이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라는 기만의 세트장에 갇혀 있다"거나 "청와대는 대한민국 경제 폭망(폭삭 망함) 지휘본부"라는 정치적 수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의 백서를 일독(一讀)하기를 권한다. 백서는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제로, 친노조·반기업 정책, 탈원전, 4대강 보 해체 등 문정부의 대표적 경제정책 10가지를 하나하나 짚는다. 물론 백서는 이들 정책을 평가하면서 대단치 않은 일에 쓸데없이 크게 화를 내는 견문발검(見蚊拔劍·모기를 보고 칼을 빼든다)의 우를 범하기도 한다. "탈레반이나 다름없다"거나 "문명을 파괴하는 정권"이라는 금도를 넘어선 힐난은 확실히 지나친 면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셈법을 고려한 이런 곁가지들을 다 쳐내고 고갱이만 추려보면 경청해야 할 부분이 분명 있다. "정부는 임금을 올리면 경제가 잘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분배할 그 소득은 누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함구하고 있다"거나 "상식적으로 2년 사이 최저임금이 6470원에서 8350원으로 29.1%나 인상되면 저학력·저숙련·임시고용 및 일용직의 실직은 명약관화하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폐문조거(閉門造車), 모름지기 문을 닫아걸고서는 좋은 수레를 만들 수 없는 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년 전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진심으로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힘들었던 지난 세월 국민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습니다. 대통령 문재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역사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치며 진화하게 마련이다.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만으론 국정을 이끌 수 없다. 반대하는 사람, 지지했지만 철회한 사람, 뽑지 않았지만 지켜보겠다는 사람도 끌어안아야 역사의 수레바퀴는 굴러간다.
그때의 첫 마음, 초심을 되새겨 볼 때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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