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코미디가 된 정치’ 우크라 새 대통령에 코미디언 젤렌스키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4.22 17:26

수정 2019.04.22 17:26

기성 정부에 득표율 70%로 압승
반러·친유럽 노선 공약 걸었지만 정치신인 약속이행 가능할지 우려
강경책 대신 '대화로 해결' 강조.. 러에게 비교적 만만한 상대일수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선 후보가 21일(현지시간) 수도 키예프에서 대선 결선투표 출구조사 결과발표후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선 후보가 21일(현지시간) 수도 키예프에서 대선 결선투표 출구조사 결과발표후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코미디언이자 정치 신인인 올해 41세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압승을 거뒀다. 개표에는 수일이 걸릴 예정이어서 공식적인 대통령 당선은 아직 아니지만 출구조사에서 젤렌스키는 70%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와 군사대결을 주장하던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이 패하고, 대화를 강조한 젤렌스키가 당선되면서 미국과 유럽 일부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이번 대선 뒤 러시아로 기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진행된 우크라이나 대통령 2차 표결에서 젤렌스키가 압승을 거뒀다.
서방이 출자해 만든 싱크탱크 '민주 이니셔티브 재단'이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젤렌스키는 73.2% 득표율로 25.3%에 머문 포로셴코 대통령을 가볍게 물리쳤다. 젤렌스키는 지난해 연말 코메디 쇼에서 대선출마 계획을 밝힌 뒤 3월 31일 1차 표결에서 30%를 득표해 포로셴코와 이날 결선을 치뤄 압승을 거두는 기적을 일궈냈다. 출구조사 결과 발표 수분 뒤 포로셴코는 패배를 인정하고 젤렌스키에게 당선 축하 전화를 걸겠다고 밝혔다.

스스로를 반 기성, 반 제도권 후보라고 내세운 젤렌스키는 포로셴코 정부의 부패와 삶의질 개선 미흡, 동부에서 러시아와 전쟁을 지속하고 있는 점 등을 공격해 표심을 잡았다. 젤렌스키는 당선 뒤 자신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배신하지 않겠다면서 개혁과 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가입 추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비롯해 우크라이나에 상당한 지원을 하고 있는 서방의 일부 관리들은 젤렌스키가 과연 러시아에 맞서 제 목소리를 내고, 친유럽 노선을 지속할 지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젤렌스키는 대선 운동 기간 러시아에 굳건히 맞서겠다면서도 포로셴코의 강경책을 버리고, 러시아와 대화로 갈등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젤렌스키는 또 국민투표를 전제로 포로셴코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EU와 나토 가입 노력도 지속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때문에 서방 일부에서 젤렌스키가 친서반러 노선을 다짐했지만 러시아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이 자칫 러시아의 압력에 굴복하는 결과를 빚지는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러시아에 맞서겠다는 다짐을 하고는 있지만 포로셴코보다는 젤렌스키가 훨씬 더 편한 상대일 것으로 보인다. 정치 분석업체 R 폴리티크의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창업자는 러시아에 무력으로 맞서려던 포로셴코보다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젤렌스키가 더 나은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어떤 경우이건 완전히 친러적인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가까운 미래에 나올 것이란 기대는 접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가 대권을 잡았지만 사실상 그가 어떤 정책을 취할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젤렌스키는 19일 포로셴코와 TV토론에서 자신은 연임하지 않겠으며 기존 시스템을 파괴하는 새로운 정치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을 뿐이다. 부패와 무능으로 곤경에 처한 정권심판론에 기대 당선된 것으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한 것은 사실상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어떻게 매듭을 지을 것인지, 경제, 군사, 외교 수장으로는 누구를 앉힐지 등에 대해서 아무 것도 밝힌 바 없다. 우크라이나 경제는 특히 2014~2015년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고 이후 부진을 보이고 있다. 성장률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연 2~3% 수준의 낮은 성장이 지속되는데다 IMF 구제금융까지 받고 있다.
젤렌스키가 우크라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효과적인 경제정책을 제시할지는 미지수다.

한편 젤렌스키는 오는 10월 의회 선거를 겨냥해 자신의 정당 이름을 '민중의 심부름꾼(Servant of the People)'이라고 지었다.
민중의 심부름꾼은 정직한 교사가 우연하게 대통령에 당선된 뒤 부패한 지도층과 싸우는 내용의 자신의 인기 TV 프로그램 이름이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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